강기갑 의원에 대한 짧은 기억... + @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1:05




강기갑의원에 대한 짧은 기억. 

몇년전 촛불집회때 네티즌들이 '강달프'라 부르는 노인이 있었다.. 

촛불문화제 연단에 오르셔서 호소하시는 말씀들, 

근데 너무 목이 쉬셔서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듣겠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고 뜨거워졌던 기억. 



"우와 강달프다. 강기갑의원님 연세도 많으신데.." 

우리끼리 주고받는 말이었는데, 앞쪽에 앉은 이가 돌아보며 씩 웃으며 

"실제론 그렇게 안 많으세요..." 

"아 그래요??"   (사실 알고보면 강기갑의원, 박무최고보다 4살 많을 뿐;)

깃발을 보니 민주노동당 모 지역위 당원분들이다... 


그래 그때부터 우린 늘 함께 있었는데.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아직은 함께하지 못하는 분들도 조금 더 멀리 돌아서 한 곳에서 만날수 있을까?

(사실은 좀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제 한식구가 되었다 생각하니 어제 본 심상정 공동대표는 또 어찌 이리 곱고 이뻐보이는가?)


잠시 헤어져 있는 사람들, 기대하고, 또 기다립니다.





...이렇게 오글거리게 끝나면 좀 그렇고, 

다른 한 토막의 기억.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을 거리에서 만났는데, 

디씨인사이드 '기갑갤'에서 왔단다.

강달프의 연설에 환호하는 그들에게 


"아... 디씨 강기갑 갤러리에서 오신거에요?"


"아뇨; 저희는 밀리터리 기갑 갤러리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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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2006 취재일지, 안양 동안구에서.




"이기자, 정기자 두 사람 안양으로 출동해."

"예에? 이제 막 들어왔는데요? 아직 기사 송고도 해야 하고.."

"취재한거 대충 정리해서 안기자한테 넘기고, 정기자 차 없지? 이기자 차로 둘이 갔다와."

"아..... 어딘데요?"

"안양."


이제 막 복귀해서 한숨 돌리는데 또 나가란다. 한시간 뒤가 마감인데... 아무리 수습기자라지만 이건 굴려도 너무 굴리는거 아닌가 싶다. 그래, 선배님들이 이만저만 하늘같아야지! 정기자는 티 안나게 궁시렁대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누나 오늘 약속 있다며. 지금 나가면 또 새벽 퇴근인데, 어쩌냐?"


누나라고 불린 짧은 머리의 여성은 입술을 앙다물며 짧게 신음했다. 흠-


"그렇지 뭐."

"그래도 안양이라 다행이네. 어제는 고양, 그제는 이천, 지난주엔 화성 갔었지?"

"가까워서 고맙네 안양.... 그보다, 선배들 앞에선 이기자라 부르는거 잊지 마."


서둘러 운전석에 오른 이기자가 클러치를 밟고 시동을 거는 사이 정기자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홍 선배.


"예, 지금 부장님 지시 받고 안양으로 출발합니다. 동안구 관악타운 아파트단지 정전... 맞습니까? 근데 이거 복구된 것 아니었나요?"

"응 그거, YTN 애들이 삽질했어. 정전 12시간만에 복구됐다고만 썼지, 단수는 안 썼거든. 아직도 물 안나와서 주민들 난리랜다."


전력 소비 급증…밤새 정전 잇따라

YTN|기사입력 2006-08-09 12:03
[지순한 기자]

연일 계속되고 있는 무더위로 전력 소비량이 크게 늘면서 전국 각지에서 잇따라 전력 공급이 끊겨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어젯밤 11시 20분 쯤 안양시 부흥동에 있는 모 아파트 단지의 변압기가 불에 타면서 전력공급이 끊겼습니다.

사고가 나자 한전측이 복구에 나서 12시간 만에 전력 공급은 재개됐지만 찜통 더위 속에서 천 8백 세대가 잠을 설치는 등 큰 불편을 겪었습니다.



본사가 있는 수원을 출발해서 안양에 이르기까지 20여 분... 조수석의 정기자는 당연하다는듯 코를 골기 시작했다. 수습기자 하루 평균 수면 1시간 반, 새벽에 출근해서 일과 끝나면 또 새벽까지 경찰서 지구대 순회하며 사건사고 단신 수집, 입사 후 주말따윈 없었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운전하는 사람도 피곤하긴 마찬가지인데, 항상 '차 없다'는 핑계로 남의 차 얻어타는 놈이 얄밉게 코까지 골며 잠을 자다니. 뺨이라도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이기자는 안양으로 차를 몰았다.


"야, 다 왔어. 일어나."


디지털카메라와 취재수첩을 챙기고 차에서 내리자, 급수차로부터 식수를 받기 위해 물통이며 주전자를 들고 줄을 선 주민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전으로 밤새 더위에 시달렸는지, 반바지나 파자마 차림에 슬리퍼를 끌며 부채질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전 아파트 단지 급수

연합뉴스|기사입력 2006-08-09 11:54 |최종수정2006-08-09 11:54


9일 오전 12시간째 정전이 되고 있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악타운에서 주민들이 긴급지원된 물을 받고 있다. /한미희/지방/기사참조/2006.8.9(안양=연합뉴스) eoyyie@yna.co.kr (한미희)



"아이구야... 이거 원, 참사가 따로 없었구만."

"일단 관리사무소부터 찾자."


내가 주차하고 오는동안 이새끼는 또 예쁜여자나 찾고 있었겠지, 울컥 올라오는 짜증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발을 옮기는 이기자였다.


"복구작업이 끝났댔잖아? 근데 왜 물이 안 나오고 지랄이야?"

"보도가 잘못됐거나, 모종의 입막음이 있었을지도."

"그런가... 저사람들 보니까 괜히 목마르네. 마실 것 좀 사올까?"


이기자는 됐다는 말 대신 흘깃 째려보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녀는 꼼꼼한 성격 만큼이나 단정한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관리사무소에 들어섰다. 반면 아직도 잠이 덜 깬 정기자는 마치 이 아파트의 주민이 된 듯, 건물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한 손에는 수첩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볼펜 뒤꼭지로 머리를 득득 긁으며 이 동네엔 예쁜 여자 없나 두리번거리던 중, 불만 가득한 표정의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헤이 소년, 아저씨랑 얘기 좀 할까?"


건들거리며 다가오는 수상한 아저씨의 말에 흠칫 놀란 학생은 주변을 살폈다.


"자네 말이야 자네. 어딜 돌아보나. 학생, 여기 살지?"

"아... 네."

"어젯밤부터 정전이라며? 물도 어제부터 안나오는거야? 아참, 나는 ㅇㅇ신문의 정아무개 기자라고 하는데, 명함 하나 가질래?"


생긴것보다 덜 위험해보였는지, 짧게 한숨을 내쉰 학생이 입을 열었다.


"네 어젯밤부터요. 물 안나와서 세수도 못하고 학교 갔다가 이제 왔는데 아직도 정전이네. 학교 갔더니 애들이 니네집 TV에 나왔다고 난리에요."

"어이구, 그럼 부모님은 출근하시고? 집엔 아무도 없어?"

"어머니랑 할머니. 근데 집이 15층이라 올라가기 귀찮은데 그냥 겜방이나... 아 짜증나 뉴스에선 다 복구됐다더니. 그냥 애들이랑 놀다 올걸."


그래 짜증날만도 하지. 단지 밖으로 발길을 돌리는 학생에게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니 잠깐, 15층? 정기자는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기사에 여기가 1800여 가구라고 했었지? '계단으로 오르내리기 힘든 고층'에 노인이나 어린이가 있는 집도 있을 터, 12시간째 정전에 단수 상황이라면 이깟 급수차로 될 일이 아니잖아. 지금 전기도 물도 끊긴 집에 갇힌 노인들이 한둘이 아닐텐데, 이러다 대형 사고 터지는거 아냐? 
정기자의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야, 너 지금 어디있어?"

"주민들 만나서 인터뷰 따고 있는데."

"됐으니까 빨리 관리사무소로 와. 분위기 심각하다."



관리사무소... 어느샌가 어둑어둑해졌다 싶더니 관리사무소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주고받는 말들을 대충 들어보니 항의하러 온 사람들이다. 사무소 안에 들어서니 이미 주민들 여남은 명이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하고 있다. 


"소장 어디있어? 소장 나와!"

"이 한여름에! 정전에 단수까지... 이러려고 피같은 관리비 내는 줄 알아?"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은 짐짓 모른척하며 분주하게 일을 하는 시늉이고, 청나라 사람처럼 앞머리만 벗어진,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닦고있는 아저씨가 소장인 모양이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저희도 최선을 다 하고 있습니다."

"최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뭐 험악한 말이 오가긴 하는데 별 일은 없을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고 이대로 구경만 한다고 뭔가 해결될 것 같진 않고.... 사태를 지켜보는 중에, 이기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예 선배님. 예.... 예. 알겠습니다. 1106동이요? ..... 예."


전화를 끊자마자 이기자는 서둘러 사무소를 나섰다.


"뭐래?"

"홍선배인데, 부장님 친구분이 이 아파트 산다고, 만나서 정보 얻으래."

"어, 나도 가야되나?"

"싫음 여기 있든가."

"그래, 뭐..."


한사람 취재하는데 둘 다 갈 필요는 없지. 난 여기나 좀 더 지켜볼까... 
정기자는 방문객용 긴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5분, 10분이 지나고... 주민들과 소장의 패턴을 대충 파악했다. 

노기등등해서 사무소를 찾은 주민들은 2~3분간 폭언을 퍼붓고, 소장은 짐짓 쩔쩔매는 표정을 지으며 예의 무책임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흥분이 가라앉은 주민은 그제야 노인에게 험한 말을 퍼부은 것이 머쓱해져서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고 서둘러 정상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그리고 또 다음 주민이 등장하고... 무한반복이다. 
이 인간들, 뭔가를 해결할 마음이 있긴 한거야? 

밖에 나와보니 어느샌가 모여든 주민들이 관리사무소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데, 족히 백명은 돼 보였다. 
여기서 웅성웅성 볼멘 소리나 주고받다가 한명씩 들어가서 기껏 입에발린 답변이나 듣고 나오는 게 고작이라니, 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왜 진도를 못 나가냐. 
정기자는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병법이 있었지? 
'불 난 집에 기름 붓기'라고.


"끌어내라!"


절묘했다. 튀지 않게, 웅성대는 사람들 소리에 적절하게 섞여 들어갔다. 본인들의 목소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투덜대는 소리나 내뱉던 사람들 입에서 '이새끼들 다 잡아 죽이자'는 과격한 소리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화악-'하고 불이 붙어 올랐다. 몇몇은 고함을 지르고 또 몇은 숫제 소장의 멱살이라도 잡아 끌고 나올 기세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정기자는 이 소동을 틈타 꽁무니를 빼기로 했다. 어릴 적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줄달음질 치던 모양으로.


'1106호라 했던가...'


서둘러 발을 옮기며 조금 전 이기자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일단 그쪽으로 합류할까... 모퉁이를 돌자 1106호 입구의 두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기자와, 그 부장 친구라는 사람인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어, 넌 안온다더니. 박선생님, 제 동료 기자에요."

"아...."


내가 다가가자 곤란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던 아저씨는 그제야 경계를 누그러뜨렸고, 이기자는 끊긴 대화를 서둘러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번 정전이 처음이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그렇다니까. 처음이 뭐야, 이번이 세번째야."

"세번이나.... 원인이 뭔데요?"

"고열로 인한 누전이지."


설명인즉, 정전의 원인은 아파트 기계실에 있었다. 단지 내 전 세대에 공급되는 전기는 그 기계실을 거치는데, 전력 사용량이 많은 여름에는 기계실이 과열로 찜통이 되게 마련이고, 그 열로 전선이 녹아서 서로 엉겨붙어 누전이 된다는 얘기다. 
처음은 2001년에 누전으로 단지 전체 정전과 단수 사태가 발생했고, 기계실 전선 교체작업을 한지 3년 뒤인 2004년에 또 한번, 다시 2년이 지난 지금 또 같은 사고가 생긴 것이다.


정전 아파트 단지 복구작업

연합뉴스|기사입력 2006-08-09 11:54 |최종수정2006-08-09 11:54


9일 오전 12시간째 정전이 되고 있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악타운 기계실에서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과열로 탄 전선을 교체하고 있다. /한미희/지방/기사참조/2006.8.9(안양=연합뉴스) eoyyie@yna.co.kr (한미희) 




"그때 그걸 교체 안했어요?"

"그때도 주민들 특별회비 다 걷어서 보수공사한다고 했는데, 전선을 싹 다 교체하려면 돈 많이 들잖아. 그러니까 녹아 엉겨붙은 부분만 잘라서 때우고 그냥 쓰는거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뻔한 얘기다. 예산은 기계실 내 전선 전체 교체로 잡고, 집행은 일부만 하면 제법 떨어지니까... 관리사무소 측에서 적어도 기천만원은 착복했을 것. 


"그리고 말야. 그때 그 소장이, 아직도 소장이야."

"아....뭔가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하지?"

"이상하잖아요. 일단 선생님께서 이 내용을 알고 계시다는건, 그 진위여부와는 별개로 이런 내막에 대한 소문이 일단 주민들 사이에 존재한다는건데, 어떻게 그 소장이 아직도 관리사무소에 있을 수 있죠?"


의아해하는 정기자의 질문에 아저씨는 빙글빙글 웃기만 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 사회부 기자지? 정치부 기자라면 내가 무슨 말 하는건지 알텐데."

"아..."

"생각해보게. 관리소장 선임권은 누구에게 있지?"

"글쎄요. 아파트에 안 살아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이기자가 입을 열었다.


"동대표 회의... 아닌가?"

"맞아. 각 동의 주민들이 선출한 동대표들이 모여서, 전체 아파트 단지 운영과 관리 전반에 대한 결정을 하지. 그런데, 두 번이나 횡령을 저지른 관리소장은 왜 아직도잘리지 않았을까?"

"아....."

"먹었군요."


이번에는 정기자가, 내뱉었다.


"그렇지. 그런걸세."


한대 얻어맞은 표정을 하는 우리를 남겨두고, 이만 하면 충분히 정보가 되었을거란 말을 남기고 아저씨는 계단을 올랐다. 황망해진 우리는 천천히 다시 관리사무소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는! 이, 사태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습니다! 분명히! 결단코! 관리소장은 이 사태를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두서없이 중언부언하는 웅변조의 말소리가 한 박자씩 쉴 때 마다, 와- 하는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벌써! 이틀째입니다! 정전과 단수가 된지 이십! 사 시간이 지났습니다! 관리! 소장에게! 책임을! 묻겠습니다! 저는 이 아파트의 동대표입니다! 동! 대표로서! 책임을! 묻겠습니다!"


관리사무소 앞에 모여든 주민들은 이미 2~3백명은 돼 보였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보았다면 단지 내에 축제나 무슨 장터라도 열린 줄 알았을 것이다. 
비루한 두 명의 직원과 함께 주민들에게 에워싸인 관리소장이 쩔쩔매고 서 있고, 
분에 못 이긴 주민들이 하나씩 목청을 높여 그를 규탄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 이웃에게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또 다른 사람이 이어 목청을 높이고, 목에 핏대를 세우고, 이따금씩은 욕설을 퍼붓는 이도 있었다. 청나라 머리를 한 소장은 여전히 땀을 닦으며 곤란해한다.


"이 사람들 아직도 이러고 있나."

"뭐야, 인민재판 하나?"


말 그대로 인민재판인지 마녀 화형식인지 모를 의식은 밤이 깊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공공의 적을 눈앞에 두고 의협심과 끈끈한 동지애로 단결한 이웃들은 서로의 규탄의 목소리를 응원하고 치하하며 만족해하지만, 그 공공의 적은 아무리 욕을 먹어도 죽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오래오래 살지 않을까?


"어머 세상에 이게 뭐니 쪽팔리게, 만안구 서민아파트도 아니고 이게 뭐야."

"그러게 남사스러워서 정말. 어제 기자들도 왔다간 모양인데, 이러다 집값 떨어지는거 아냐?"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사태를 관망하던 정기자의 귀에 들어온 주민들의 말이, 아까 그 1106동 아저씨가 들려준 이야기보다도 충격적이다. 
아... 그래, 이런 주민들이구나. 이 주민들 수준에 딱 어울리는 등신같은 동대표회의, 그 품격에 딱 걸맞는 관리사무소... 왠지 허탈해졌다. 보고있기 답답해서 사람들을 선동했던 짓도, 뭔가 캐보겠다고 취재하고 들쑤시고 다녔던 일도.. 모두가 부질없는 짓이었나 싶어졌다.
이기자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철수하래. 어차피 부장님이 친구분 통해서 취재 끝냈으니 오늘은 여기서 퇴근하랜다."

"또야? 아, 어차피 직접 쓰실거 우린 왜 온거야?"


투덜대지만, 내용만 접하는것보단 직접 발로 뛰면서 체득하는 것임은 알고있다. 그게 더 공부가 되겠지. 수습기자니까. 하지만 이런 현장을 접할 때마다 편치 않은 마음에 무게만 더해간다. 


"누나 또 평택까지 운전하고 갈거야?"

"그럼, 별 수 있어?"

"그냥 인계동 여관에서 자고 출근하자. 방값은 내가 낼께."

"꺼져."


애써 기분을 바꿔보려 농담을 주고받지만, 마지막으로 들은 주민들의 말이 정기자의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뭐야, 이 와중에 기껏 생각한다는게 집값이야? 서민아파트랑 비교하면 그게 위안이 되는건가. 

결국 기사는 나가지 않았다. 우리 하늘같으신 선배님들도 뭔가를 잡수셨겠지. 괜찮아 이따위 것, 이미 익숙하니까. 못보던 광고가 하나 더 실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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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삼모사(朝三暮四)의 참 의미.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52

알려져 있기로, 조삼모사(朝三暮四)란 눈앞에 보이는 이득만에 집착하여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뜻하는 고사성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저공(狙公)이라는 자가 원숭이를 많이 길렀는데, 형편이 어려워져 먹이를 넉넉히 줄 수 없게 되자 그는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겠다"고 했고, 이에 원숭이들은 반발했다. 그러자 저공은 말을 바꾸어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마"고 하자 원숭이들이 기뻐했다는 일화가 <열자(列子) 황제편(黄帝篇)에 전해진다.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주나,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주나 어차피 하루에 받는 도토리의 양은 7개'라는 이유로 인간들은 이 내용을 원숭이들의 어리석음으로 이해하고 있다.

위 내용의 고사가 현대까지 전해지면서도 '근시안적 행태를 하는 인간들을 이 이야기의 원숭이들에 비유'하며 비웃고 있으나, 
잘 생각해보면 실상 어리석은 것은 이야기 속의 원숭이들이 아니라 '저공'임을 알 수 있다.

하루 7개의 도토리를 먹는다 해도,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 먹는것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먹는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우리나 농장에서 사육되는 동물이라 한들, 활동을 시작하는 아침에 섭취하는 식사와 곧 잠자리에 들 저녁에 (우리말로 '잘밤에') 먹는 식사가 같을 수 없다.

실제로 많은 인간들은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나, 보편적 권장 식사량은 '아침은 황제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먹으라고 하는 이유와 같다.
물론 바쁜 현대인들은 아침은 빵조각이나 시리얼로 때우고 저녁에 푸짐한 만찬을 즐기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 속의 원숭이들이 오히려 인간들보다 현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한가지 인간들의 어리석은 점을 덧붙이자면,
인간들이 '조삼모사'라는 고사성어를 활용하는 상황에 빗대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차이에 집착하여 본질을 놓치는 어리석음,

내가 보기에 분명 도토리는 하루 7개로, 아침저녁을 어떻게 주나 똑같은데! 어리석은 원숭이들! 이라고 자기 멋대로 판단하고 어리석은 생각으로 상대를 '조삼모사 일화의 원숭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저공'들이, 
자신의 좁아터진 시야 안에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를 뿐인, 자신보다 현명한 이들 모두가 그저 '그것도 모르는 원숭이'로 보이는 멍청한 두뇌들이,

지금도 도처에 깔려있다. 그 어리석음에 환장할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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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제공량? 사기치지마라. 그리고 제로칼로리의 실체도.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40

왼쪽은 남양 맛있는우유GT 무지방, 오른쪽은 매일우유 무지방&칼슘 이다.
얼마전에 장보러 갔다가 이것들 보고 빡쳐서 나중에 글 쓰려고 찍어뒀었다.


확대해볼께.

먼저 매일우유.



총 930mL 인데, 1회 제공량 200mL 당 60kcal 란다.
그러니까 전체 930mL 의 열량은 279kcal 라는거다.

요즘 가공식품들 죄다 이런식이야. 뭔놈의 몇회 제공량 이따위식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사기를 치지? 그냥 정량 그대로 적으란 말야.


남양  이샛퀴들은 한술 더 뜬다.
  


남양 맛있는우유GT 무지방, 총 900mL
전면엔 아예 열량에 대한 언급도 없거니와, 저렇게 0 fat 이라고 커다랗게 써놓으니 마치 열량이 0 라는것처럼 보이려는 수작 같잖아? 누가 속으라고?



열량 30kcal ??? 설마 그럴리가.
자세히 보면 위에 ( 100mL 당 함량 ) 이라고 써있다. 여긴 아예 몇회 제공량이란 말조차도 없어. 그냥 100mL 영양성분이라고 개미코딱지만하게 적어놨을 뿐이야. 이런 개샛퀴들같으니.
왜 이런것들이 아무 조치 없이 시판되는거지?

물론 모든 소비자가 칼로리 따져가며 구매하는건 아니겠으나, 이런건 일단 눈속임으로 사기를 치겠다는 의도가 명백하잖아. 



그리고 무지방, 무칼로리, 칼로리제로 따위 말에 현혹되지 말라고 한마디만 더 할께.

100mL당 열량이 4 kcal 미만이라면 식품기준법 세부표기기준에 따라 '제로칼로리' 0kcal 라고 표기할 수 있어. 실제로는 1~3kcal 정도인데,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 '아스파탐'이란걸로 단맛을 내지.
( 이 아스파탐이라는 성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이 얘기 하려던 글은 아닌데다 굳이 그렇게 따지기 시작하면 애초에 탄산이나 카페인 따위 뿐 아니라 술 담배 등 해롭지 않은 기호식품 없으니 일단 패스하고... )


문제는 이 아스파탐 덕분에, 설탕에 비해 1/200 의 칼로리만으로도 같은 수준의 '단맛'을 느낄 수 있다는건데, 
이걸로 끝난다면 참 좋겠지 적은 칼로리로 단거 실컷 먹을수 있고... 

하지만 몸은 거기에 동의하지 않지. 

뇌가 느끼기에 분명 이만큼 먹었는데, 왜 열량이 이거밖에 안들어왔지? 하며 계속해서 쪼아대는거야. 뭔가 이상하다고, 당이 심각하게 부족하다고... 더 섭취하라고 섭취하라고... 그래서 결국 제로칼로리는 폭식을 불러온다는 얘기임.

가끔 정말 중요한건 '순리'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 냉이아빠가 썼던 글, 저엔트로피 삶을 지향, 적게 처먹고 적게 싸지르고 살자고. 저지방? 제로칼로리? 이런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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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에 대한 미심쩍고 수상한 이야기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39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저자
프랭크 오스키 지음
출판사
이지북 | 2003-11-18 출간
카테고리
건강
책소개
소아의학의 권위자인 저자는 철분 결핍성 빈혈을 앓는 유아들이 늘...
가격비교


위 짤방은 프랭크 오스키 라는 양인의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라는 책이다.



일단 "물론 이 책 내용만을 100% 신뢰할수는 없으므로, 이런 관점의 해석도 있다는 것만 알아두자"라는 전제로 쉴드 하나 치고 가자. 음....




나도 우유 엄청 좋아했다. 국민학생때 반 전체 우유 받아먹으면 나는 우유값 안내고 (가난은 나의 긍지!) 우유 못 먹어서 남기는 애들꺼 2~3개씩 먹고 남은건 가방에 싸와서 연탄보일러 위에 올려놨다가 데워지면 먹고 그랬다.

술마신 다음엔 꼭 우유로 해장을 하고, 남들 탄산 마실때 나는 우유 마시고, 그것도 흰우유 제일 좋아해서 한때는 맛만 보고도 제조사(서울, 남양, 매일 등) 구분할정도로 우유 광이었다.

어른들 영향이 컸다. 우유 잘마시면 칭찬했고, 특히 많이 배웠다는 선생들이 대부분 그랬다. 양키들은 어릴때부터 우유를 마시고 자라서 키도 크고 건강한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유를 안마셔서 왜소하다고, 그래서 구세대/기성세대보다 우리 젊은층이 발육이 좋고 키가 큰 이유는 그나마 우유를 마시고 자라서 그렇다고.

그래서 난 30년 넘게 미친듯이 우유를 드링킹하며 살아왔는데, 
난 아직도 우유를 마시면 30분 안에 설사를 한다. 
아직도 내가 '안 먹어 버릇 해서 몸이 흡수를 잘 못하는'거냐?

---

책 내용 전체를 옮길 이유는 없겠고
대충 요점만 가져올께.


-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것이다. 이유기 이후에도 젖을 계속해서 먹는 포유동물은 '인간'뿐이다. 그것도 인간 어미의 젖이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소의 젖을, 인간들은 일생동안 먹는다.

- 이유기가 지나면 체내에서 유당 소화 효소의 분비가 줄어든다. 이 이상 우유를 마셔서는 몸에 좋기보다는 소화기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유당 소화 효소가 분비되지 않는다. 위장에서 소화되지 않은 유당은 큰창자에서 박테리아에 의해 발효되어 CO2와 유산으로 변한다. 그래서, 방귀를 뀌고 설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유에는 당, 지방, 단백질 외에도 '인'을 포함한 여러 성분이 포함돼있다. 왜 인간의 소화기관에는 맞지 않은 '송아지를 위한 소의 젖'을 설사까지 해가면서 몸에 좋답시고 계속해서 먹는가?

- 칼슘 과다섭취도 칼슘부족만큼 유해한것은 마찬가지다. 게다가 인간에게 칼슘이 부족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칼슘의 하루 권장섭취량만큼 칼슘을 먹는 인간과 반도 먹지 않는 인간의 뼈를 비교해보았으나 칼슘 때문에 뼈가 튼튼해진다는 근거는 없었다. 오히려 과다한 우유의 섭취는 철분결핍성 빈혈과 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 유당 소화효소가 결핍된 경우 우유의 지나친 섭취는 소아 아토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


푸드, Inc.

Food, Inc. 
9.8
감독
로버트 케너
출연
마이클 폴란, 에릭 쉬로저
정보
다큐멘터리 | 미국 | 94 분 | -


이 영화는 전 세계 인류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식량을 쥐고 있는 거대 자본들의 정체에 대해 말하고 있다. 초고효율 대량생산을 위해 이젠 유전자를 조작 변형하지 않은 품종은 아예 소송을 해서 재배를 금지하도록 만든다. 이 영화에 나오는 '기형적으로 살코기가 많은 닭을 대량생산하는 공장들'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생산하기 위한 젖소들에게도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

요는, 우리는 거대 낙농기업들의 자본권력에 속고 있다는 얘기다. 
우유가 맛이 좋아서, (술, 커피, 담배처럼) 기호식품으로 먹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최소한 우유가 완전식품이라는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이 나온게 2003년, 같은 해에 번역돼서 국내에도 출간됐다. 그럼에도 절대 공론화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우유는 완전식품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롭다'는 주장이 100% 옳다는 보장이 없다 해도, 한번쯤 이슈가 되었을법도 한 내용인데 매스컴에서는 절대로 다루지 않는다. 이유는 뻔하잖아? 조중동에서 정언유착을 집중보도하는 날이 올까? 이동통신3사는 왜 전화요금을 안내릴까? 전기자동차가 보급되는걸 정유회사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당연한 얘기....


나는 이 책을 보고 우유를 끊었다. 칼슘은 멸치에도 많고 채소를 먹어도 된다. 골다공증이 걱정된다면 운동을 해라. 인간에게 우유는 그냥 콜레스테롤 국물일 뿐이다. 우유는 송아지의 것이다.



사족) 아, 물론 가끔 우유 먹긴 한다. 라면 먹을때만 국물에 타서....

어쩔수 없이 먹는다면 남양우유 쓰레기는 절대로 먹지마라. 

그 이유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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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車)를 한대 뽑으려고 해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35

한개 쓰고나니 어쩐지 탄력받아 하나 더 씀미다 +_+

아래 글에 언급한대로, 쓰다가 날렸기 때문에 소소한 개그는 생략하고 본론 돌입!




출퇴근 거리가 참 묘해. 무슨짓을 해도 1시간 거리.

난 광명 하안1동 살아. 서울 독산역에서 다리(금천교) 하나 건너면 집까지 걸어서 10분 거리. 광명 사람들은 안터저수지 알거야.
그리고 일터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근처.



가장 선호하는 루트는, 5534번 타고 종점(하안동 차고지)에서 종점(여의도순복음교회)까지 가는건데, 버스도 제일 자주 오고 무엇보다 갈아탈 필요 없어서 편해.
다만 이 버스는 대림동, 신길동을 돌아서 보라매공원 찍고 도느라 결국 1시간을 채우지. 여기만 안 돌면 40분이면 갈텐데...




헐 68분이나 나왔네. 다음지도어플은 경로 탐색 할때마다 해당 시간대에 따라 편차가 있나봐.


다음은 전철 루트. 



여기도 뭐 도찐개찐이여. 철산역 - 7호선 2호선 9호선으로 타나,
구로디지털역 가서 2호선 9호선 타나, 아예 독산역 가서 1호선 9호선 타나
다 거기서 거기임... 갈아타는 시간땜에 더 걸리기도 하고...


그리고 최근 알게 된게 11-2번인데, 이건 실내체육관 앞에서 타면 철산역, 시청 지나서 곧바로 다리(철산교인듯?) 건너 서울로 진입, 순식간에 신도림-영등포역 찍고 여의도공원 도착하더라. 체감상 30분정도밖에 안걸리는듯... 근데 문제는 배차간격이 15분정도 돼서... 한대 놓치면 리스크가 커.. 게다가 출퇴근시간대엔 항상 만원이고.... 그래서 자주 이용하지는 않는 편.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
다음 지도 어플 말고 네이버 지도 어플은 자전거 주행 경로도 산출해주는데,
내 통근 경로는 대중교통 말고 자전거로 가도 딱 1시간이라는 사실. ㅋ



지난번에 조회했을땐 영등포역-신도림역까지 차도 따라 가다가
도림천 끼고 쭉- 돌아서 안양천따라 달리라고 되어있더니...
이번에 조회하니 당산역-양평역 위로 해서 안양천으로 접어들라고 하네.
뭐 크게 차이 없지만... 여튼, 이러나 저러나 1시간 거리.





동생 귀국하고 하안동에 자취방을 마련했어. 20대 돼서 부모한테 (드리면 드렸지) 손벌리지 않고 살아왔으므로, 모은 돈도 얼마 없어 월세로 시작... 방세는 둘째치고 소소하게 나가는 돈이 너무 많다. 게다가 며칠전에 정말 충격받은거...

세상에 한달 교통카드비가 6~7만원이나 나와!!!!
진심 공포스러웠다. 맙소사.. 대중교통인데 이렇게나 들다니..

하긴 요즘은 삼실에 거적때기 깔고 자는일 없이 매일 출퇴근하는데다 종종 외근도 나가니까... ㅜㅜ

요즘같아선 정말이지; 
킥보드 타고 버스 뒤에 매달려 다녀볼까 생각까지 했어; ㅜ_ㅜ



그래서, 통근 수단을 좀 바꿔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던거지.

일단 요즘 내 "표준" 일과는 이래.
5시반~6시 기상, 도시락싸고 헬스장 가서 1시간 근력운동 후 출근.
퇴근 후 헬스장 가서 1~2시간 운동 후 책 좀 보다가 취침.
(어디까지나 '표준'이니까, 지향한다는 얘기지 꼭 지키는건 아냐.
 퇴근후 운동은 매일 하는데 아침은... 주 3회 하기 힘든듯...)

여기서 통근을 자전거로 하면? 흠..... 좀 빡세겠지. 일단 땀범벅으로 출근해서
삼실 도착하자마자 씻고 옷갈아입어야겠군... 퇴근후에도 마찬가지....

요즘 들어 더욱.... 하루가 너무 빨리 가고 시간이 모자라.
자전거 통근도 좋지만 (운동 되고), 유사시를 위해 좀 더 빠른게 필요해.




그래서 생각한 것이 '오도바이'   ....못타싸이클.

근데 심각한 문제가 있어. 나 자전거 못 타 ㅜㅜ 그러니까 못타 싸이클;;

자전거 못 타는 사람 드물지? 뭐 그런 얘기 자랑스레 할일은 아니니까;
근데 탈 기회가 없었던거지. 어릴때부터 가난을 긍지로 알고 자라다 보니
부모한테 '자전거 사주셈' 얘기할 일도 없었고.
멀면 버스타고, 걸어서 1시간 내외 거리면 그냥 걸어다녔고.
(포항에서 상도중학교 다닐때 매일 형산강 다리 걸어서 건넜음 -_-v )


그래도 그동안 시간 쪼개서 틈틈이 연습한 결과; 어제 성공했지롱. ㅋ
우와...... 기분 좋더라 +_+ 못하던걸 해냈을때의 기분은 정말!
간신히 중심잡고 쇙- 달리는데 나도 모르게 키득키득 웃다가
차량진입방지용 기둥에 꽝 들이받고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는데
그러고도 기분 좋다고 땅바닥에 드러누워서 신나게 웃었지.... 

아... 자전거는 좀 더 연습하면 탈만할듯.. 이번 주말에도 자전거 타야지.



아차, 쓰려던 얘긴 오도바이 얘기였지? 도입부 정말 길었다;


  오토바이 하면 역시 이런게 멋있지!!
  이런것도 쫌 괜찮지!!





취향이긴 한데, 이런건 좀 별로야. 

이런것도 영..... 

특히 스쿠터같은건 모양빠지니까 
이왕 지르는거 돈 좀 발라서 멋있는놈으로 뽑아야지 했지! +_+ ㅋ



그래서 인터넷으로 오도바이를 사려고 찾아봤어.

.............헉! 근데 뭐가 이렇게 비싸!!!

난 그냥 오도바이는 한 50만원 하고 
싸구려 스쿠터는 한 30만원 할줄 알았지..;;

와... 정말 비싸다....ㅜㅜ

오토바이가 이정도면 차는 도대체 얼마나 하는거야? 예전에 누가 중고로 티코 30만원에 샀댔는데 그건 거짓말인가???



낙심하던 중에, 눈에 확 들어오는 저렴한 상품이 있었으니....


미니바이크!! 라는거였다.

오.... 모양도 예쁘다. 오오... 멋있다...



세상에 이런 아이들이 80만원씩 한단다...
중고로 사면 더 싸겠지????


우왕...ㅜㅜ 멋있다...


그래서 미니바이크를 사볼까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

사기전에, 블로거들의 사용기를 찾아봐야지? 하고 검색하다 발견한 동영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친듯이 쳐웃으며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젠장......ㅜㅜ 더러운 세상....







(아직도 미련이 남아....)      나 이런거 타고 통근해도 괜찮을까?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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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 뽀뽀 포퓰리즘.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32


"자, 보세요. 제가 사장님한테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자고 해요. 
제가 이기면 사장님이 저한테 뽀뽀 해주시고, 
사장님이 이기면 제가 사장님한테 뽀뽀 해드리는거죠. 
어때요, 하실래요?"



"에이.. 안하죠 그런 게임이 어딨어요 ㅎ"

"그렇죠? 그런데 이 게임을 거부하시면 사장님은 빨갱이고 뽀뽀 포퓰리즘이 되는겁니다."

"어머."

"네 지금 그런 상황이거든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룰 자체를 제 멋대로 정했는데 그런 게임 왜 하겠어요?"

"하긴...한나라당이 투표 독려하는건 머리털 나고 처음 보네요."

"그렇죠. 투표든, 가위바위보든, 게임 자체가 선하거나 악하진 않아요."


-후략

...............



며칠이나 지나서 이제야 올리는 이유는
이걸 생활방에 올리나 정치방에 올리나 고민하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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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와 수제비를 향한 거침없는 증오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27


난 수제비와 칼국수를 정말 싫어해. 
잔치국수는 완전 좋아하고, 우동은 그럭저럭 괜찮은데
수제비나 칼국수는 정말,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

어릴때 졸라 찢어지게 가난해서, 방학때만 되면 방 빼고 부모는 각자 회사에서 숙식하고 나랑 동생은 친척집에 보내지곤 했는데.. 특히 백부댁에 가면.. 그집은 진짜 잘살았거든. 근데 나랑 동생은 한달내내 칼국수 수제비만 해먹이고 자기들끼리 나가서 외식하고 오더라고. 별것 아닌것같지? 근데 더 자세히 말하면 누워서 침뱉기라.. 이것밖에 말할수가 없어. ㅋㅋ
 

뭐 사람에 따라서 이러다가 기형도 시인처럼 수제비에 꽂혀버리는 사람도 있긴 한데,


난 여전히.. 수제비만 보면 화가 나. 
너무 분해서 눈물이 나.
방학때마다 한달내내 수제비만 먹어서가 아니라,
돈없다 가난하다고 형제들에게조차 무시당하고 천대받던 
어린시절 내 부모가 떠올라서 이가 악물리고 눈에서 피눈물이 솟아.



언젠가는 데이트중에 수제비 먹자는거 거절 못해서 따라 들어갔다가, 
결국 짜증이 치밀어 괜힌걸로 싸우고 나온적도 있어.

지금도 그래. 누가 뭐 먹을까 하면 항상 이렇게 말하지.

 "아무거나 괜찮아요. 칼국수랑 수제비만 빼고요."


'부자얍' 횽이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올 4월 김해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할거야.
나 결국 그 칼국수 안먹고 도망쳤잖아. ㅋㅋㅋㅋㅋㅋㅋ



때때로, 나의 칼국수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말로 표현하기도 해.

"아니 도대체, 저런 음식을 돈 주고 사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가요.
애초에 저런 음식이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겠어요.
저따위로 대~충 뭉텅뭉텅 뜯어서 삶은 밀가루반죽 덩어리니,
막대로 굴려 밀어서 틱틱 썰어서 삶은 밀가루 덩어리같은걸
돈을 받고 파는 그 자체가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 행위 아닌가요?
어째서 무슨 바지락이 들어갔느니 닭한마리가 들어갔느니
저따위 간판들을 버젓이 걸어놓고 손님들을 받고 있는거죠?
저 아까운 밀가루로 차라리 배부른빵을 만들든지, 
틈새가 매운 사발면을 만드는게 낫지 않나요?"


이런식으로 오바질을 해가며 열변을 토하면, 열이면 열, 다 웃는다. 화내는 사람 본적 없다.



다만, 나는 칼국수집이나 수제비집 안에서 이런 소릴 하지는 않는다.

칼국수를 완전 좋아하는 칼국수천을 포함한 대화중일때나,
외길 수제비 인생을 살아온 수제비언을 붙들고 이런 말을 하지도 않는다.

혹은 그런 사람들 다수가 보고있을 가능성이 큰, 
요식업자 동호회 카페라든지 하는 곳에서 일부러 이런 얘길 쓰지도 않는다.


물론,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봉팔러들 중에도 사실 알고보면 
칼국수나 수제비를 판매하는 식당 사장님이 계실수도 있다. 
혹은 일생 잊을수 없는 수제비에 얽힌 소중한 추억이 있다든지,
칼국수 면발만 보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난다든지 하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수 있거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웃자고 위에 써놓은 칼국수 저주드립이 슬슬 미안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다음의 문구를 삽입한다.


칼국수/수제비를 좋아하거나, 관련 요식업에 종사하시는분들을
모욕하거나 비난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던거 아시죠? 용서하세요!




음... 난 무슨 말을 하고싶었던걸까? 개그본능에 충실하다보니 그만 잊고 말았네.(정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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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를 찾아서...... 연일 정(鄭)가 이야기.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10:02

1.

나는 연일 정(鄭)가 문충공파다. 시조는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이고,
지금 이름 정해윤은 개명한것이고 원래 이름은 '정ㅇ용'으로 容자 돌림이다.
할아버지는 X자 희자로 '희'자 돌림, 
아버지는 규자 X자로 규(圭)자 돌림을 쓰셨다.
이것이, 내가 어릴적에 어른들에게 들어서 알게 된 정보의 전부였다.


내 할아버지 댁은 포항시 동해면 공당리의 정(鄭)가 씨족촌에 있었다. 
(내가 어릴때 영일군이 포항시로 통합)

온동네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친족들이었다.

옆집, 뒷집 아이와 1~2살 차이가 났기에 그냥 친구처럼 어울리며 자랐지만
(그래봐야 명절때만 가서 어울리는게 전부였지만)

그렇게 친구처럼 놀고 때로 싸우기도 하는걸 보던 어르신들 중에는 예끼 이놈들 하시면서

"니가 니 아재뻘이고! 니가 니 조카뻘인데! 쟈는 느그 할아버지 뻘이다! 느그가 친군줄 아나!"

이렇게 화를 내고 꾸짖는 분들도 계셨다. 그땐 그저 어리둥절 했지만..


참,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동호댁, 동호 할아버지라 불렀다.

옆집 할아버지는 동국댁, 뒷집은 창국댁, 건너집은 창호댁이었다. 


 (사진 출처, 정원▽ 할아버지의 블로그)

어릴때 옆집 뒷집 아이들과 올라가 놀던 커다란 바위... 더울땐 여기 누워서 낮잠자면 최고였다! ㅋ

근데 여기 올라가서 놀고있는걸 어른들이 보면 크게 혼나곤 했는데,
이제보니 이게 고인돌이었던거구나...ㄷㄷㄷ -_-; 남방계 고인돌..맞아 이렇게 생겼지..;;;
정원▽할아버지 블로그에는 "돌빼기 (고인돌과 당수나무)" 라 써있던데,

설마 여기서 제사지내고 그랬던 영험한 나무인건가? -_-;; 혼날만 했구나.....



2.

중딩때 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많다. 얼마전에 썼던 얘기..
어느 애니 마지막장면에 나온 대사를 진짜로 찾아봤다는 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 호기심이 날 죽일지도 모른다. ㅋ)

포항 상도중학교에서 찻길 하나 건너면 포항시립도서관이 있었다.
내 중학시절의 방과 후 시간은 거의 거기서 보낸 편이다.
물론 집히는대로 흥미를 끄는것만 찾아서 읽어댔지만..

그러다 어느날 발견한것이, 한국 성씨에 대한 통계자료와 관련 문헌들..

'정도령 설화'라는 것도 그때 책에서 보고 처음 알았다. 
다들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난 사실 정도령이었다. 
정동영이 아니고 바로 내가 정도령이다! 


미안... 농담이었고, 
여기 시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체계화된 정보"를 얻게 되었다.



1) 연일정가는 영일 정, 오천 정이라고도 한다.

포항시로 통합되기 전의 지명이 영일(迎日)군, 현재도 남아있는 지명이 연일(延日)과 오천(烏川)이다.
지금도 그 포항, 호랑이 꼬리 안쪽을 영일만이라 부른다. 옛날 가요 '영일만 친구' 다들 알지?

이렇게 현대는 인구가 많고 행정구역이 세분화되면서 이리저리 나눠쓰는 지명들이 
과거에는 전체 한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때는 오천이라 부르다가, 고려때는 연일현이 되었다가 다시 영일현으로 부르다가, 
조선초까지 영일현이라 하다가 다시 연일현이 되었다가 영일,연일을 혼용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결국 연일 정, 영일 정, 오천 정은 모두 같은 말, 같은 집안이란 얘기다.


2) 득성시조(得姓 始祖)는 신라 초기 6촌 중 자산진지촌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였고,
경주정가, 온양정가, 초계정가, 연일정가, 하동정가, 동래정가, 
광주정가, 광성정가, 월성정가, 장기정가는 모두 뿌리가 같다.
연일정가의 시조는 정종은(鄭宗殷)이다.

그러니까, 역사시간에 배운대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갑툭튀 하는순간,
원래 신라에 있던 6촌의 촌장들이 각각 이씨 최씨 정씨 손씨 배씨 설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던 거지.

이후 지백호 촌장의 후손인 정종은(鄭宗殷) 할아버지가 신라 왕에게 직언을 하다 유배되었고,
그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 할아버지가 연일현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 정종은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 "연일정가"가 된거란 얘기다.


3) 연일정가에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감무공파(監務公派), 그리고 양숙공파(良肅公派)가 있는데,
지주사공파의 시조는 정습명(鄭襲明)으로, 대표적 인물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있고, 감무공파의 시조는 정극유(鄭克儒)로, 그 집안엔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있다.


4) 지주사공파에는 포은공파(圃隱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문계공파(文繼公派), 문손공파(文孫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만호공파(萬戶公派), 도사공파(都事公派) 총 8개의 세파가 있는데, 이중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의 후손인 포은공파를 문충공파(文忠公派)라고도 한다.

내가 중딩때 도서관에서 얻은 정보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일단 여기까지였다. 어른들 말씀과 들어맞는 데가 있었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연일정가, 지주사공파의 문충공파(혹은 포은공파) 후손으로, 돌림자 容을 쓴다.

그런데 난 몇대째냔 말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내 대 까지 3대의 돌림자는 희, 규, 용이란 말이지.
책에 나온 연일정가의 어느 파 항렬표를 찾아봐도, 그 순서가 다르단 말이다....


그래도 중딩이 이정도 찾아낸게 어디야. 그땐 스스로가 대견했어.

이방원의 후손으로 간주되는 전주 이씨 성을 가진 녀석들과는 절대로 놀지 않았던
재수없는 꼬맹이였다는 점만 빼면 말이지. ㅋㅋㅋㅋ 더러운 이씨조선의 후예들! 이러면서 싸웠지 ㅋ
(이씨 집안 봉팔러들 미앙.. 그땐 중딩때였어 -_-)

뭐, 그래도 나만 그런건 아니었을거야? ㅋㅋ
나중에 22살때 노사모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왕(王)씨였는데,
세상에 남편이 전주이씨라는거야.... 헉... -ㅅ- 
아니나다를까, 결혼 허락받기가 엄청나게 힘들었다는군.

"네년이! 왕씨 집안에 감히 이가놈을 들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이런 불호령이..ㄷㄷㄷ



5) 연일정가의 집성지, 특히 포은 선생의 후손들은 경기도 용인에 많이 산다.

당연히 그렇겠지?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의 묘가 용인시에 있는걸.
그래서 난 용인 부근이나 경기 중부쪽에 사는 '정'씨 성 가진 사람 만나면 꼭 본을 물어보곤 한다.




3.

26살때 쯤이었다. 또다시 호기심이라는 놈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지... 인터넷이라는 무궁무진한 정보의 바다가 있으니까.
백방으로 검색해서 찾아봤다. 그러나 여전히, 이미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찾아냈던 정보들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인터넷상에 공개된, 연일정가와 관련된 모든 항렬표를 뒤져봤지만
우리 집안의 항렬과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난 30대인가 32대인가...

그러다 좋은 사이트를 하나 찾아냈다. 
연일정씨 홈페이지( http://www.yuniljung.com ) "연일정 닷컴"이라는 곳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무턱대고 수집하던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있는 곳이었다.
인사말 부분만 소개할께.

캬~ 이 할아버지 멋지지 않아? 
난 이런 할아버지들 참 좋더라. 신문물을 배우고 활용함에 두려움이 없고...

그러고보니 또 생각나네. 

개혁당때 알던 할아버지 한분은 '양계혈통 연구소'라는 홈페이지(http://root.or.kr)를 운영하시는데, 

여기도 인사말 부분만 소개할께.

본인은 동성동본의 당사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 당시 同姓異本인데도 주위에서 같은 박씨끼리 결혼하느냐는 소리를 가끔 들었습니다. 동성동본도 아닌데 왜 그런가 하고 그 때부터 족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알고 보니 같은 성씨끼리 결혼한다는 수군거림이 상당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부계혈통이라는 관점에서는 한 혈족이니까 당연히 대개의 같은 성씨끼리는 혼인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법률로서는 동성동본만 아니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同姓異本보다 훨씬 촌수가 먼데도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나 그 父系血統이란?
나의 어머니와 딸은 나와의 혈통관계가 없고, 오직 나의 아버지와 아들만이 혈통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입니다.

정말로 나의 어머니와 딸은 나와의 혈통관계가 없는 것입니까?
정말로 나의 아버지와 아들만으로 혈통이 이어집니까?
정말로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셨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 명백한 모순에 대해서 모순이라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선 제가 먼저 시작했지요. 
어차피 이 일은 지도층의 젊은여성들이 - 일반적인 남성들에게서는 기득권 포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고, 나이든 사람들에게서 발상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 나서야 할 일이라고 보는데, 아직은 대개가 부계혈통의 굳어진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우선 제가 먼저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주위의 몇몇 분들의 도움으로 이 일을 유지관리하고 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다보니 힘겨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 일은 어느 개인이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해야 합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피할 수 없는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어느 젊은 단체에서 이어받아 보다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체계를 세워서 본격적인 연구소로 자리잡아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양계혈통연구소 운영자  -  종주




그래서 개혁당 활동하실때도 성을 떼고 '종주'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지.

이렇게 200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홈페이지에서, 
호주제와 동성동본금혼법 폐지 이전에는 
동성동본 혼인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법률상담도 해주곤 하셨지.
개혁당때 이미 60대셨던걸로 기억하는데, 이제 칠순 넘으셨겠구나.. 종주 할아버지 잘 지내시려나..~_~
관심있는 이들은 한번쯤 방문해보시길.. 눈여겨볼만한 좋은 자료 많음..ㅎ


흠,;; 얘기가 많이 샜군. =_= 말 나온김에 소개하고싶어서...
다시 연일정가 얘기로 돌아갈께.


뭐, 결국 이 홈페이지에도 문의 글을 남겨보았지만, 이렇다할 소득은 없었어.

"포항시 (구 영일군) 동해면 공당리에 연일정가 씨족촌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때 듣기로, 우리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후손으로 문충공파라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희자, 아버지는 규(圭)자, 저는 용(容)자 돌림입니다.
그런데 몇대손인지는 들은 바 없고,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낸 항렬표들과는 
전부 순서가 다릅니다. 어찌된 일인지..."

답변은 명료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너네 집안 어른들한테 물어봐야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ㅋ 요는 그렇단거지.)

그리고 추가로 알게 된 정보들.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항렬표는 거의 직계 종가의 것이고,
실제 세파들마다 항렬표는 제각기 다르거나, 
세파별 종가에서만 공유하는 대표 항렬자가 있거나,
서로 항렬자 안에 水, 木, 土 등의 '변'만을 공유하거나 하는 집안들도 있단다.

그러니.. 더욱 막막해지지.
서로 사는게 바쁘다고, 10년씩 15년씩 왕래 한번 없었던 백부댁에 뜬금없이 전화해서
백부님 제가 몇대손인가요 하고 물을순 없지 않나.

그래서 다시,  궁금증은 묻어두고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았지.



4. 

2008~2009년쯤, 외국에서 지낼때였을거야. 한국이 그립기도 했고, 특히 고향이 많이 그리웠지.
그래서 검색하다 찾아낸 뜻밖의 정보.

요즘 지방자치단체들 많이 좋아졌더라. 이런 홈페이지들도 만들어주고. ㅋ
포항시 동해면 홈페이지 ( http://dong-hae.ipohang.org/dong-hae )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댁이 있는, 정가 씨족촌 공당리의 지명의 유래를 잘 설명해놓았더군.


6) 공당(孔堂)

동해면 최남단에 위치하며 구룡포읍 성동리, 장기면 죽정리와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리인 공당, 2리인 도래말, 새태말, 안말골, 3리인 뱃돌골, 하수리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수기의 지석묘가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으며,남쪽에 옛 내북면의 이름을 딴 내북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어귀에는 옛 숲의 흔적으로 300년생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세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 있다. 

(사진출처 - 정원▽ 할아버지 블로그)


그렇지.. 내 아버지의 모교이자, 옆집 뒷집 친척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내북국민학교였지.
그녀석들이 졸업할때 이미 전교생 6명이 다 졸업해버려서 폐교되고 청소년야영장으로 개조되었다지만..



조선 선조때의 학자 정응성(鄭應星)이 임란을 피하여 이곳에 와 공맹(孔孟)의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라 하여, 혹은 지형이 구멍의 형상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오천 정씨의 세거지로 정사하(鄭師夏)와 정동환(鄭東煥)을 추모하는 북계서사(北溪書社)가 있으며, 매년 11월초에 마을 앞 제당에서 부부 동신과 종 등 3신위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본문에 설명된 3신위로 추정되는 문중 제사 풍경... 게다가 사진 날짜 11월...ㄷㄷㄷ)




그렇다면 이제 실마리를 찾았지?
저 내용에 언급된 정응성 할아버지, 정사하/정동환 할아버지들이 내 직계 선조란 얘기니까,
저분들을 연일정가 문충공파 계보 내에서 찾아내면 되는거지!

그래서 다시 찾은 연일정가 홈페이지, 
그러나 그 사이 엄청나게 방대한 족보들이 업데이트 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7) 지주사공파의 세파중 하나인 포은공파, 그 안에도 엄~~~청나게 많은 세파들이 있다는걸.....

포은공파의 세파들

별좌공파, 판서공파, 포천공파(또 이 안에 왕곡파, 이한공파, 공한공파, 영한공파, 명한공파, 諱佾公파, 諱侃公파, 諱儆公파, 諱偉公파, 諱仁公파), 첨추공파, 사과공파, 감찰공파, 사과공파, 정랑공파, 정자공파, 별제공파, 사용공파, 사정공파, 세륜공파, 임헌공파, 세안공파, 세태공파, 통선랑공파, 판관공파, 사직공파, 도촌공파, 현감공파, 충순공파, 참봉공파, 부장공파, 현령공파, 승훈랑공파, 현감공파, 부사공파, 진사공파, 감찰공파, 교수공파, 참봉공파, 부사공파, 감찰공파, 통례공파, 정언공파, 도사공파, 사용공파, 생원공파, 광미공파, 참봉공파

생원공파의 세파들

생원공파, 설천공파, 교리공파, 한윤공파, 지평공파

사정공파의 세파들

송암공파, 문함공파, 곤봉공파, 쌍봉공파, 좌랑공파

문손공파, 문계공파, 정랑공파, 만호공파, 도사공파는 다행히(?) 세파 없음. (혹은 이 사이트 내에 알려지거나 기록된 바 없음)

아... 저 압도적으로 우월한 세파들을 보라.. ㄷㄷㄷ 역시 지주사공파를 대표하는 인물 포은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그런가.. 정말 기가 질렸다.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족보들을 뒤지는데....

근데!! 왜 이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족보들을 텍스트로 하지않고 전부 그림파일로 만들어놔서!
검색도 안되고 일일이 그림파일 열어보며 찾아야 하는건데!!!! ㅠ_ㅠ

그러다 결국 포기.. ㅡ.ㅜ



5. 

대단원의 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이제 2011년 시점으로 돌아와서... 내 고향 방파제가 어쩌구 하는 포스팅을 한적이 있었지?



이건 내 외가가 있던 구룡포읍의 방파제야. 내 10살 이하 어린시절은 거의 거기서 보냈지...
생각해보니 10살 넘고 그 방파제 가 본 기억이 없어. 조만간에 포항 갈 일 생기면 꼭 가볼거야.

여하튼, 구룡포 방파제 사진을 찾아내고나니 또다시 고향 생각이 물씬....
이번에도 공당을 찾아봤지. 
어 그런데!!
어떤사람이 자기 블로그에다가 고향 사진이라며 공당 사진을 올려놨어!
게다가 블로그 주인장 이름이 정원▽......


이 사진 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할아버지 댁이 있어......
내가 채 열살도 되지 않았던 시절, 그땐 비포장도로였지만.. 여기서 뛰어놀고,

네살, 혹은 다섯살때 옆집 뒷집 아이와 밭에 갔다가, 
난생 처음보는 '파'를 꺾으면 폭발한다는 뒷집 아이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녀석이 꺾는 시늉을 하자 '우앙~~'하고 울며 할아버지댁으로 도망쳤던 기억...

가난에 찌들어 사느라, 잔치날 처음 먹어본 두부 부침을 옆집 아이가 '이거 뱀 고기데이'라고 하자
먹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 (물론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두부부침 ㅋ)

이 블로그 발견하고 이 사진을 보는순간 전율이 흘렀다..........



누구지? 어느 집 사람일까?
일단 블로그에 메일 주소를 남겼다.

"저는 동호댁 ㅇ자 희자 할아버지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규(圭)자 돌림, 저는 용(容)자 돌림입니다.
혹시 가까운 친족 분이신가요? 연락 한번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는 한참 잊어버리고 지내던 중, 3일 전에 메일이 날아왔다.

나는 공당 에서  대구로 이사온지 45년 되었으며
구룡포 중학교 6회 졸업생 춘자고모 와  동창생이며                 
현재 대구에 살고 있어요   전화 한번 주세요

공당 우리 일족 가계도

정○희 - 규☆ - △용, △아
          - 규△
          - 규○

정△희 - 규□
          - 규▽
          - 규◇ - □용 - 원▽
                             - 원□
                             - 원○
  주) 돌림자는 중간자, 끝글자를 번갈아 쓰니까..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일단 급한 업무를 마무리해놓고,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원자 ▽자 선생님 되십니까? 메일 잘 받았습니다.

- 아, 목소리가 젊은 사람 같구만. 나는 올해 칠십 셋일세.


%ㅕ#()%)%#@%_#(%_ ^^????...........칠십셋 칠십셋 칠십셋......


약 15분가량, 들뜬 목소리의 통화였다. 
칠순이 넘으셨지만 사진 찍는 취미가 있으셨고, 
PC를 구입하고 인터넷을 배워 블로그란걸 만들어 사진을 올리셨다.

그리고 45년전에 떠난 고향, 그래도 매년 1번은 꼭 찾아갔던 고향에서
자신을 특히나 귀여워하였던 동호 할아버지의 손자-삼남의 장남-가 그 블로그를 발견했고
이렇게 이메일로 연결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연일정가 지주사공파의 문충공파의 참봉공파 28대손이고, 
이분은 29대손으로 내 조카뻘 되는 할아버지시란걸...



.....내 부모는 무척 어릴때 고향을 등졌고, 아버지가 23살, 어머니 21살때 나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자마자 당장 생활고에 허덕이며 정신없이 살아왔을텐데,

세파란 그렇다. 사실 애초에 지주사공파와 문충공파가 갈라진 이유, 서로 촌수를 따지지 못하고
항렬과 종친회를 따로 하고 있는 이유도, 선대의 무덤들을 찾지 못해서다.

어디 심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일제시대때 공당에 있던 우리 선산이 심가 집안으로 넘어간 이후
아직도 우리 조상들의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단다....

결국, 20여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에 종손이신 ◇자 희자 할아버지께서
기록이 남아있는 새 파조를 모시고 '참봉공파'라는 세파를 새로 만들어 족보를 편찬하셨다는데,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와서, 심지어 부모가 되어 생계를 꾸려야 했던 
내 아버지는 그 족보를 받지 못한거고.



내 뿌리 찾는데 참 오래 걸렸다... 중딩때 생긴 이 호기심 푸는데 족히 15년은 걸렸지 않은가.


참, 내 조카뻘 되시는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들도 참 걸작이다.

"내가 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게 벌써 40년 전이니,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네 큰아버지가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 두었단 얘긴 들었지만, 
너희가 태어났단 얘긴 듣지 못했구나. 워낙에 어릴때 객지로 나가서 살았으니..

어린시절, 그러니까 내 동생 원□가 네 큰아버지인 규☆이랑 동갑이라 친구처럼 어울리며 자랐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아서 별로 어울리지 않아 기억에 없지만, 내 동생은 네 아버지도 잘 알거야."

내 어린시절 그랬듯, 그런 모습을 보고 꾸짖는 어르신이 또 계셨겠지?

"이놈들아! 네놈이 저놈 조카고! 저놈이 네놈 아재뻘인데! 감히 맞먹고 놀아!"  하는 불호령 말이지. ㅋㅋ


조만간에 대구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찾아뵙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끝냈다.
뭔가 훈훈하다. ㅋㅋㅋㅋ 이렇게 인터넷에서 친족을 만나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연일정가 홈페이지에서 내 항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열고.... 참봉공파.... 헉..... 아니 잠깐........;;;;;;;;;;;;


8) 연일정가에는 총 6개의 참봉공파(參奉公派)가 있다.
지주사공파 포은공파에 3개, 생원공파, 도사공파, 사정공파에 각 1개.


.......-_-;;;;

왜 하필 지주사공파의 포은공파 밑에 참봉공파가 3개나 있냐고!!!

선조님들 참 너무하십니다 그려. 
참봉 벼슬 하셨다고 참봉공파... ㅜㅜ;

할아버지도 참... 참봉공파 시조가 누군지는 알려주셨어야죠...

각각의 참봉공파의 파조인 정홍(鄭洪) 정기형(鄭箕亨) 정사달(鄭士達) 세 할아버지 중 
어느분이 내 직계 시조인지, 포항시 동해면 공당리에 모여 살고있는 내 친족들의 선조인지가 
마지막 숙제로 남았다.

(연일정가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연일정가의 모든 세족들의 족보를 집대성, 총망라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각 세파들의 제보와 정보 제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수록된 3개의 참봉공파는, 다른 세파들과 공유되는 23대까지의 기록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하.... 아직도 풀리지 않았구나..... 



뭐, 하는 수 없지. 담에 대구 가서 여쭤보지 뭐.
덤으로 그 족보 한권 얻어오든지 스캔해오든지 해서 
연일정가 홈페이지에도 올려주고 말이지.
5년전에 질문 올렸던 그 사람이라고, 
이제야 그 답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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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담배들...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09:52


처음 담배를 배운것은 중2때였다.

친구놈 따라 좀 노는 애들이랑 어울리면서 담배를 시작했는데,
그때 우리 기준에서 버지니아슬림은 아저씨들 피우는거 (요즘으로 치면 에쎄 쯤 되겠지? ㅋㅋ)
그리고 애들은 주로... 아.. 뭐였지 기억이 안난다..-_-;;;

암튼 내가 피웠던건, 입생로랑(YveSaintLaurant)이었다.


이게 무슨 명품 브랜드인지 그런것도 몰랐고, 
검은 곽에 빨간바탕 금색 Y S L 박힌 로고가 멋있었고,
약간 멘솔타입의 향이 좋았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담배를 끊었다. 끊었다기보단, 중딩땐 맛도 모르면서
그냥 폼으로 피웠던거지. 논다는 애들은 그러니까. 입담배(겉담배)하고 길에 침 찍찍 뱉고,
길 가던 어른들이 째려보면 '뭘봐? 확!'하며 이빨을 드러내는 재미였을 뿐.

게다가 더이상 '노는 애들'이랑 어울리지도 않았고, 착실한 분위기의 고등학교라서..
그래도 아주 가끔씩, 굳이 추산해보면 1달에 1개비 정도 피웠던 것 같다. ㅋㅋㅋ
방 구석 깊숙하게 숨겨놓고, (일기장이랍시고 두터운 노트 안쪽을 오려내고 그안에 숨겨뒀었지 ㅋ)

힘든일 있을때만 한개씩 꺼내서 품고 뒷산에 올라가서 살짝.... 내뿜곤 했다.




그런데 고3때인가.. IMF가 왔다. IMF때 우리집도 엄청 큰 타격을 입긴 했지만
사실 내 딴에 가장 속쓰렸던건.. 더이상 입생로랑이 수입되지 않게 되었던 거다.
사복을 입으면 20대 중후반(-_-;)으로 보이는지라, 종종 먼 동네에 가서 담배를 사곤 했던
그 가게들마다.. 진열대에서 입생로랑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리지널이 먼저 없어지고, 나중에는 흰 곽의 라이트와 빨간 곽의 필터버전, 
녹색의 진짜 멘솔타입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슬펐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애연가 카페를 검색해서 가입한 뒤, '희귀 담배 취급점'까지 뒤지고 다녔다.
주로 서울 강남, 경기도 일대까진 다녀본듯 하다...



결국 포기하고, 담배를 바꿨다. 이번엔 필립모리스였다.


필립모리스는 필터에서 달콤한 맛이 나는게 특징이었다.
이때가 아마 21살 무렵이었을텐데, 이녀석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필립모리스 담배 회사에서 누가 양심선언을 했다더군. 필터 제조 공정에 문제가 있어,
흡입하면 미세한 필터 부스러기들이 폐로 들어간다나... 정확힌 기억나지 않지만...
필립모리스도 곧 자취를 감추었다.

그럼 난 뭘 피우라고! ㅜㅜ


그당시 대세가, '타임'이 약간 고급..(그러니까 아저씨들 피우는거) 이었고,
대체로 국민담배 하면 '디스'였던 것 같다. 거기서 약간 고급형이 디스플러스라고 나왔고..
근데 난 디스 냄새가 그렇게 싫었다... 왜 그렇게 구린내가 나는지...
그래서 결국 내가 택한 것은...

"팔팔 라이트"였다.


팔팔 라이트, 꽤 오래 피웠다. 내가 유치원 다닐적에 아버지 담배 심부름으로
'팔팔 라이트 한갑 주세요'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아직 남아있는걸 생각하면 참 묘하다.
(정작 아버지는 지금 에쎄 순 0.5)

그렇게 20대 내내 팔팔 라이트를 피웠는데, 이젠 팔팔도 단종되기 시작하더군...
팔팔 골드가 사라지고, 가끔씩 변덕으로 사던 팔팔 디럭스도 사라졌다.
이제 남은건 라이트와 멘솔 뿐...이었는데 이젠 멘솔도 없나? 잘 모르겠다.




그리고 28살때 어학연수차 필리핀에서 반년정도 지냈는데,
거기는 아직도 길거리에서 '개피 담배'를 판다. ㅎㅎ 옛날의 우리나라처럼 좌판에 깔아서
메고다니면서 파는 할머니나 애들도 있고, 골목 골목 노점에서 유리병에 담아두었다가 팔기도 한다.

여기서 피웠던 것이 윈스턴 라이트 였다.

필리핀 생활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한번 쓸 생각인데, 짧게 소개하자면
필리핀에서 어학원 3달 끝나고도 3달간 더 자취하며 살게 된, 그리고 내 동생까지 필리핀으로
건너오게 만들었던 인연은 '투츠'형 때문이었다.

투츠형은..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대 나와서 삼성전자 수원지역 총 책임자쯤 되는 초엘리트였는데,
흠 그러니까.. 봉팔러 아저씨들은 산미구엘 알지? 
그 산미구엘 공장이 바콜로드에 있는데, 거기 보스였으니까...
이 형은 한국을 참 좋아했다. 나나 동생과 코드가 맞았던 것도 있었고.. 
뭐 다른얘긴 나중에 필리핀 얘기로 따로 쓰고, ㅋㅋㅋ
투츠형은 말보로만 피웠어. 왜냐면 투츠형네 회사(산미구엘)가 말보로 담배 수입 총판이었거든.
나한테 자꾸만 '말보로 좋아 말보로 피워'하면서 한갑씩 사줄때마다
'어 그래요? 난 윈스턴..' 이러면서 꿋꿋이 윈스턴을 피웠지 ㅋㅋㅋㅋㅋ

참고로 이건, 내가 필리핀 있을때쯤 새로 나왔던 말보로 라이트 블루 버전이야.


근데 말보로 라이트는 골드 버전이 있잖아? 왜 이게 따로 나오냐고 투츠 형에게 묻자
'요즘 젊은 애들은 골드보단 블루가 더 땡기지'하며 대수롭지않게 설명하더라고.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난 호주로 건너가서 '동양계 외국인노동자'가 되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서도 7개월 있었지 아마... 

여기선 담배를 말아서 피웠어. ㅋㅋㅋㅋ 지금도 방 한구석에 남은게 있을텐데..
호주는 담배가 엄청 비싸거든. 한갑에 우리 돈으로 2~3만원 한다 생각해봐...ㅜㅜ
한두번 (월급 탔을떄라든지) 사서 피워본적은 있는데,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호주 담배 그림은 올리려다 그냥 링크만 첨부할께. 진짜 토나오거든.

http://cancer_info.blog.me/105300664

그리고 주로 피웠던, 말아서 피우는 담배... 윈필드 담배인데, 골드가 제일 순했어.





요너석이 cigarrette roller, cigar rolling machine 이라는 놈인데, ZIG ZAG 라 써있고.. 
내 쓰던거랑 똑같이 생긴거 사진 찾았네 ㅋㅋ

암튼 저 두개의 롤러 사이를 벌리고, 필터 종이를 깔고, 담뱃잎을 덜어서 잘 편 다음에,
롤러를 닫고 한번 꾹 꾹 눌러준 담에, 다시 필터에 침을 발라서(우표처럼 풀이 말라있어)
다시 닫고 돌돌 말면 담배 완성! 근데 처음엔 만들기 어려워서 곧잘 망치기도 하는데,
나중엔 이 롤러 없이도 그냥 맨손으로 담배 말아서 피우고 그래 ㅋㅋㅋ



그러다가 일자리 구하고, 돈 좀 버니까... 말보로 골드 피웠다. 
골드는 다들 알테니까 사진 패스하고..왜 하필 말보로 골드였냐면,
한국이나 인도 동남아에서 오는 애들 중에 담배 안피우는 애들도 한보루씩 사갖고 와서
현지 시세보다 조금 싸게 팔아서 용돈 하거든.. ㅋㅋ 나같은 놈들은 그걸 사서 피우는거고.
필리핀에서 투츠형이 그렇게 권할때는 안피우다가 ㅋㅋㅋㅋ



결국 2009년 여름에 귀국해서는, 옛날 피우던 팔팔라이트와 말보루 골드를 번갈아 피우게 됐는데
그러다 '몸에서 담배냄새가 너무 심하게 난다'는 말을 듣고 담배를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이왕 피우는거, 뭘로 바꿀까.. 한참 고민도 해보고, 원 이라든지 시즌이라든지 던힐이라든지,
남들 피우는거 하나씩 얻어피워도 보고, 한갑씩 사보기도 했어.

(그래도 에쎄는 싫었어! 왜냐면.. 아저씨들 피우는거니까! ㅋㅋㅋㅋ)



그러다가... 이왕 피우는거...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한테 접근할 기회가 있어서, 용기내서 과감하게 물었지.

(누군지는 패스할께. 뭐 우리끼리야 다 알겠지만, 
 '그분이 담배 피운다'는 얘기 대놓고 하는것 자체가 별로라..)

그러자 대답...

"난 담배 브랜드같은거 안따져"

ㅡ,.ㅡ;;;
우짜나..
근데 그때 어느 비서분이 하는 말... 사실은 ㅇㅇ 블랙(국산) 피우신다고.. 헉.

말보로 골드가 0.6mg인가 그렇지? 근데 ㅇㅇ 블랙은 0.1mg 이니까..
당장 ㅇㅇ 블랙을 사서 피워보았지만 피운것 같지도 않아...ㅜ.ㅜ;

그래도 한번 줄여보자... 순한거 피우면 담배 냄새도 덜 풍기겠지..싶어서,
처음에는 ㅇㅇ 레드(0.5), 그담에 ㅇㅇ 블루(0.3), 
다시 블랙으로 바꿔가며 점점 줄였지.

그렇게 바꾸고 보니... 아.. 속았다는걸 알았어...

ㅇㅇ 블랙을 피우는건 '그분'이 아니라, 
그냥 '비서아저씨'였던거야 ㅠㅠ 으아ㅏ아악!!!
그냥 옆에서 누가 주면 그거 피우시는거였어!!! ㅜㅜ
그러다 정작 요즘 피우시는건 ㅇㅇ 블랙도 아니고 ㅇㅇ 블루였어!!!! 
쳇쳇쳇쳇쳇.........


속았다는 기분이 들고 나니, 아... 더이상 그걸 피우고싶지 않았어.
그런데 이미 입맛은 순한담배에 길들여져서, 말보로 골드로 돌아가려니 너무 독하고..

또 이것저것 순한것 위주로 피워보다가 잡은것이

마일드세븐 LSS 1 (Less Smoking Smell -_-;) 


그야말로 냄새 덜 나는 담배라는건데,
사실은 옆으로 열리는 곽이 재미있어서 피운거였고...ㅋㅋㅋ +_+

그런데 어느날은 아는 아저씨가 '담배좀 줘봐'하고는, 이걸 열다가
거꾸로 들고 여는 바람에 담배들이 전부 바닥으로 쏟아져버리는 일이 발생...~_~;;;; ㅋㅋㅋ


사실은 결정적으로... 이 담배가 몸에 별로 안맞더라고.
이걸 피우니까 자꾸만 속이 쓰려와서.....=_=



이후 마지막으로 바꾼 담배.


말보로 플레이버 플러스.
이름이 길어서, 가게에서 '예?' 하고 되물으면 짜증나.
그래서 그냥 담배갑 보여주며 '이거 주세요'
요즘은 아예 보루째 사다놓기도 하고...
참, 어떤 가게는 '말보로 원'이라 부르는 데도 있더라.


뭐 꼭 맛이 괜찮아서라기보단, 0.1mg 에다가,

순전히 곽이 저렇게 열리는게 귀여워서 피우는거임...ㅋㅋㅋㅋ +_+




아.. 써놓고 보니까 무지 길구나. ㅇ_ㅇ;

그리고, 양담배 왜 피우냐는 말 들으면 "참여정부때까지는 국산 피웠어요"라고 답한다.

그러니까, 다음 정권은 꼭! 민주정부로!!! 그럼 국산담배로 다시 바꿀께!!! ㅠ_  ㅠ




사족) 아, 이렇게 마무리해버리면 너무 재미없으니까..

사실은 담배 그림들 검색하다가 이런 포스트도 발견했다.




입생로랑이 아시아와 러시아에서 패키지 담배로 출시된다.

럭셔리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의 담배는 고소득층을 타깃으로 출시된 것으로 국내 판매는 현재까지 아직 미정입니다.

2000년대 초반 출시되었다가 단종 이후 , 다시 선보이게 된 입생로랑 담배는 미니멀하면서도 럭셔리함을 연출하여 담배 하나 하나 골드라인과 로고가 

장식되어 있으며 니코틴과 타르의 양이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루이비통 2011년 S/S 컬렉션에서 라스트 룩으로 케이트 모스가 담배를 피우며 등장하여 참석한 이들도 담배를 피우며 쇼를 관람하는 등 세계적인

금연 열품과 대조적으로 담배를 패션 아이템으로 도입한 쇼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입생로랑은 1960년대 턱시도 차림에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이미지화한 'Le Smoking'이라는 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명품담배>입생 로랑 담배 : 완벽한 포장 - YSL cigarettes: perfectly packed|작성자 JABOT LEE http://jabotlee.com/20128974894



헤에.. 저게 다시 나오는구나. ㅇ_ㅇ;
근데 본문내용 잘못되었다고... 2000년 초가 아니라 90년대 중반부터 있었다고 -_-+

그리고 난 어쩐지 담배피우는 여자가 좋더라. =_= 그냥 그렇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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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재미없는, 포르노에 관한 기억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09:49

포르노가 짧고 재미없었단 얘기가 아니라,

내용이 짧고 재미없다는 말!




우리 땐 빽판 세대는 아니고 (90년대 말에 고교생활 했으니)

일본음악 듣는 친구들이 종종 밀수 음반 사러 세운상가나 용산에 다녔던것 같아.. 

난 당사자가 아니라 가본적이 없는데, 

한번은 친구녀석이 모 밴드 공연실황 비디오 테잎이라고 사왔는데 내용물이 포르노인거야...-_-;


녀석 딴엔 좋은거(콘서트 영상) 보여준다고 날 초대해놓고, 

두근두근 하며 테잎을 플레이했더니 거기에 나온건... -_- 


아직도 기억난다. 

벗은 여자사람을 묶어놓고 투명한 액체를 막 붓고있던데.. 

그 앞부분만 보다가 황당해서 껐던 기억이 난다.


이녀석 1시간 반짜리 공연실황 보면서 열광하며 먹으려고 과자랑 탄산음료랑 다 깔아놓고

친구놈들도 불러놓고는... 얼굴이 흙빛이 되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더 황당한건, 나중에 2007년인가..

웹하드에서 게임 받다가 야동-_-이 있길래 무심코 다운받았더니

그때 보았던 그 90년대의 영상물이.......ㅜ.ㅜ;;; 





2.

그때 본의아니게 입수했던 테잎은 

학교 친구들끼리 돌려돌려 보다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항상 용돈이 궁했던 우리는 그 이듬해쯤 그 테잎의 행방을 수소문하기 시작했지..

그걸 잘~ 팔아먹으면 그래도 2~3만원은 받을텐데! 하고말이지.



나중에 알고보니, 이미 테잎은 우리학교를 떠나 

옆 학교의 좀 논다 하는 녀석의 손에 들어갔고...

싸움과는 거리가 멀었던 우리 친구들은 거의 포기한 상태였는데...



결국 얼굴이 좀 험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_- 내가 총대를 메기로 했어.


밤늦게 그녀석 집에 찾아갔지. 

아니나다를까 하느님이 보우하사 마침 녀석의 집엔 부모님이 다 계셨고,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었어.


 "야 나 ㅇㅇ이 친군데, 테이프 받으러 왔어 네가 가지고 있다며"



그놈, 엄청나게 당황하더니 채 1분도 안걸려 테잎을 갖다주며 "야야 빨리 가 빨리 가 ㅜ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후 우리는 그 테잎을 PC통신으로 팔아서

그 돈으로 까까도 사먹고 피씨방에 가서 스타를 했습니다 >_< 데헷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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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흐르는 물처럼 살자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09:48


흐르는 물처럼 살자.

굽이치다가

가끔은 튀어오르고,

또 가끔씩은 

하얀 거품도 내면서.


- 2008.3.5 -




3년전에 썼던, 내 시 치고는 참 짧은 시다. ㅋㅋ
'하이쿠'를 염두에 두긴 했으나... (5.7.5 아닌 8.5 조이긴 하지만)
허접한 내 실력에 이런거나마 자주 나오진 않는다. ㅋㅋ



문득,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방울이나마 흘릴것을 두려워한다면, 움직이지 않으면 되겠지.

하지만 강물이란 흘러 지나가고 또 흘러들어와 채워지는거 아닐까...


난 20대를 이바닥(?)사람들과 함께 했어.. 
2002년 광주경선때 노사모 가입한게 22살때였고 지금 31살이니까,
그야말로 "나를 키운것은 팔할이 노무현"인 셈인가. ㅋ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흘러 지나갔다.

노사모에서 개혁당 만든 사람들과 함께 나왔고,
(노짱 당선 후에 해체하지 않는 노사모를 탈퇴했고)
또 열린우리당 만들때 개혁당에 잔류한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가 참정연을 만들때 노사모에 남았던 사람들은 국참연이 되어 나타났고
또 그들 중 일부는 돌아오고 대부분은 정통들로 가버렸고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이 되고서
또 다른 대안을 찾아 새로운 당을 만든 사람들이 있고
이후 나는 탈당했고, 지금껏 민주당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고
참정연, 참평포럼을 거쳐 '팬클럽' 시대로 돌아와 파이를 키우고자 했던 사람들과
또 거기에 남은 사람들, 
그 팬클럽에 만족하는 사람들과 또 새로운 당을 만든 사람들

이제는 또 새로운 기로에 다가섰어.



그래, 두려우면 움직이지 않으면 돼.
하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참 많이들 흘러 지나갔지만, 
모두를 가슴에 담아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우리는 결국 한 곳을 바라보고 있잖아?
그러니까 다들 헤어진 게 아니야.


(ㅎㅎ 어땠을 것 같아?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그렇게 굽이 굽이에서 헤어졌던 사람들,
결국 2008년 촛불집회 현장에서 그 모두와 재회한 기분이란!)



달래고 보듬을 생각은 없어.
그런다고 해서 설득될 사람들이라면 
이미 스스로 고민해서 답을 찾았겠지.

대신, 함께 했던 너희를 언제까지고 잊지 않을께.

지금은 안녕. 이 길을 돌고 돌아 
또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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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한"이 정말 싫다!!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09:45


아... 한약 데워먹고 푹 자는데 새벽에 웬 전화땜에 깨버렸다.... ㅜㅡㅜ 

다시 자려니 잠이 안와서 누워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는 우리말 중에 "또한"이란 놈이 있다. 



원래는 "이것은 그렇고 저것 또한 그렇다"라고 써야 정상인데,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때, 특히 되도않은 겉멋 부릴때 "또"나 "그리고"를 "또한"으로 잘못 쓰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식이다. 



"이것은 이러이러해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것은 그러해서 그것이고, ...."



아오... 이런 반푼이같은 문장들을 볼때마다 모골이 송연해지고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생각엔 이런 사태의 원인은 '국어교육 덜받은 영어교사들'에게 있지 않나 싶다. 

내 기억에도 중고등학교시절 상당수 영어선생들이 and 를 '또한'으로 해석하게끔 가르쳤던듯 하다. 



MB is banpuni. And Hyeono is Palpuni. 



엠비는 반푼이다. 그리고 현오는 팔푼이다. 이렇게 가야 맞는데, 중딩들 붙들고 ㅙ석시키면

엠비는 반푸니 입니다. 또한, 혀노는 팔푸니 입니댜. 이럴것같아-_-

'또한'을 쓰려면 문장이 이래야지. 

MB is yuggap. Hyeono too. 



암튼 정리하자면, '또한'은 접속사가 아니다. '또'에 '한'이 붙은것도 아니고, '그리고'의 할아버지도 아니다.
'더구나'를 '더군다나' '더더군다나' '더더더더더더더더군다나' 이따위로 꾸며쓰는것도 아니다.
'또한'은 그냥 '나 또한' '무엇 또한 그렇다' 라고 할때 쓰는 말이다.

영어로 치면 and 나 then 같은게 아니고, 그냥 too 일 뿐이다.



아오 ㅜㅡㅜ 우리말 어휘 얘기하느라 영어로 예를 들어야 하는 나도 한심하구나...


이만 자러감다... 이상은 약기운 떨어져 멍한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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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과 오노, 8년만의 재회- 기사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

독백_일기,잡담 2012. 3. 9. 09:42

http://news.nate.com/View/20101109n01963&mid=s0703&cid=224403



 



기사 내용은 뭐... 상단에 링크 있으니 가서들 보시고....


벌써 8년전 이야기다. 오노의 헐리우드액션, 금메달 빼앗긴 김동성...

당시 '반미'의 아이콘화 되었던 김동성 선수인데,

다시 그런 얘길 되풀이하려는건 아니고... 그냥 김동성 선수 개인에 대한 관심이다.


좋든 싫든, 김동성은 '반미' 여론에 휩쓸려 지나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부당하게 금메달을 빼앗긴 억울함,

약소국인 대한민국 선수로서 강대국 미국선수에게 편파판정으로 금메달을 빼앗겼지만,

그건 그거대로의 문제인데,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김동성은 반미의 아이콘이 되었고...


뭐 그렇게 얻은 유명세로 CF도 찍고, 가수 데뷔도 하긴 했지만,

개인 김동성 본인으로서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또 그것과는 별개로, 김동성의 쇼트트랙 선수로서의 실력 자체는 정말 넘사벽,

경기 동영상으로만 봐도 엄청나다. 다른 선수들이 옹기종기 붙어서 경쟁하며 한바퀴 돌때

마치 신처럼, 유유히 한바퀴 먼저 돌아 두바퀴째, 세바퀴째 추월한다.


이런 실력을 가졌는데, 어째서 국적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자신은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 하는가.




가끔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사는 것 같다.


프로 운동선수는 정말로 모두가 "열혈 애국자"일까?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 대회에 나간다고 해서

그들의 가슴속엔 들끓는 애국심이 충만하고,

최우선의 과제가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일까?


그냥... 운동이 좋아서, 그 종목을 좋아해서 선수가 되었을수도 있는데.



누구나 그런 생각 한번쯤 해보지 않나? 에이 내가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에 태어났더라면....

누구나 해볼수 있는 생각이다. 안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름난 운동선수에게는 그런게 절대 용납되지 않는것 같다.


특히 외국에 진출한 운동선수들, 박찬호, 김병현같은 야구선수들이 그렇고

박지성이나 차두리같은 축구선수도 그렇다.


차두리의 아버지인 차범근이야, 본인이 사실 애국자였고(어떻든 행적을 볼때)

붐차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며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위상을 높인건 맞다.

그러나, 그시절 붐차 그분이 그랬다고, 지금의 한국인 운동선수들도 그래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박찬호도 고백했었지, 그런 국민들의 기대가 정말 힘들고 부담스러웠다고.

박지성도 그랬다. 축구는 잘하고싶었지만 유명해지고싶진 않았다고.




.... 기사 내용을 보면, 결국 김동성은 '미국인'이 되었다.

지금은 그 '오노'와 같은 미국인인 것이다.

한국계 미국인과 일본계 미국인.

그리고 미국에서, 미국인 쇼트트랙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일말의 배신감 같은걸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김동성 개인을 생각한다면... 

과연 조국은, 미국선수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김동성에게 뭘 해줬나?

사실 우리나라 체육계도 썩을대로 썩어 있지 않나. 추성훈 같은 비운의 선수가 왜 생겨났으며,

어째서 국기원태권도가 세계에서 외면받고 창헌류 태권도가 대세가 되고 있는가?

안현수선수와 관련된 이야기까지 거론하고싶지는 않고... 


한편 그런 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차라리 내가 미국 선수였다면...

미국선수라서 얻는 다른 이득따위 필요없고, 

최소한 내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을수 있었을텐데.




그냥, 마음이 좀 복잡하다.


김동성 선수, 아니 김동성 코치... 

그가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앞으로도 행복했으면 한다.



http://www.handypia.org/trickster/1365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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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독백_일기,잡담 2011. 12. 7. 13:47
1981년 부산 출생
1997년 포항 동지고 중퇴
2000년 안산 동산고 졸업
2001년 서울공연예전 실용음악과 휴학

2002년 안산/시흥 노사모 온라인팀장
2002~3년 군복무
2004년 열린우리당 안산시 지구당 당직자
2004년 열린우리당 안산상록갑 장경수 선거캠프
2005년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 허동준 선거캠프
2006년 열린우리당 안산시장 문영희 선거캠프
2006년 열린우리당 안산시의원 김민 선거캠프
2006년 경기신문 사회부/정치부 기자
2007년 안산/시흥 참평포럼 상근
2008~9년 어학연수(필리핀, 호주)
2010~1년 시민광장 상근집행위원
2010년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유시민 선거캠프
2011년 국민참여당 김해을 이봉수 선거캠프

이래갖고 어디 취직하나... ㅋ
이미 빨갛게 얼룩덜룩한 인생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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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박치기 1 - 오늘 크게 사고 한번 치자! (2004)

독백_일기,잡담 2009. 9. 28. 17:53



형(오다기리 죠) - "그 강이 조선반도의 정 중앙을 흐르고 있어서

학생1 - 세로로요?

형 - 옆으로야 옆으로~
원래는 박세영이라는 분이 쓴 조선 노래인데, 그걸 교토 사람이
일본어로 번역해서 노래한거라는군.

그 강을 끼고 북과 남으로 갈라진 나라가
언젠간 하나가 되고 싶어요~란 의미의 노래지.

아주머니 - 남북분단(젓가락을 자르며)...비극이죠.

형 - 원인을 말하자면, 우리 일본이 침략 지배를 했기 ?문이지.

일본이 한 거라구....둘로 나뉘게 한건...

학생1 - 그런거군요....

형 - 이름까지 바꾸게 했다고. 카나야마, 타카야마...
마츠야마는 조금 다르지만서도.
하지만 천황가에 관련된 한자 쓰는걸 금지시켰거든.

60만..70만인가가, 일본에 소나 말처럼 끌려왔단다.

아저씨1 - 그러고나서, 소련과 미국의 대리전쟁을 했지.
조선을 어떻게 할건지...조선 먹기 전쟁.

아저씨2 - 뭐라는거야, 중국이 도중에 참전했잖아.
소련제 전차로....

아저씨1 - 미국이 원폭까지 떨어트릴려고 했다니까

형 - 500만명이 죽었으니.

학생1 - 500만!?!?

아주머니 - 지금은 휴전하고 있어요. 끝난거랑은 달라, 쉬고있을 뿐.

학생1 - 어떻게 하면 되는거죠?

아주머니 - 모두가 화해하는수밖에.

아저씨1 - 38선인지 뭔지 선을 그은 놈들이

아저씨2 - 그녀석들, 세계 곳곳에 선 긋고는 이쪽은 내꺼 저쪽은 니네꺼 
불만없지? 이러면서...

형 - 일본도 홋카이도는 소련껄로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아저씨3 - 우리 딸도 홋카이도에 있는데

형 - 홋카이도 어디요?

아저씨3 - 후라노에서 잼가게 하는데, 피부도 뽀얗고...

아줌마 - (학생에게) 내일 전쟁에 나가라고 하면 어쩔거야?

학생1 - 무리죠.. 학교도 가야하고..그치 코스케?




영화의 중반부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곱상하게 생긴 코스케라는 학생은, 친구(학생1-_-이름모름 ㅋ)와 함께 
'어떻게 하면 여학생들 관심을 끌어볼까'하는 생각으로 밴드와 포크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960년대 교토의 히가시고교에 다니는 한 평범한 일본인 고교생입니다.

한편,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왔던 조선인들의 '조선고교' 학생들은
'박치기'로 교토를 주름잡던 조선인2세 이안성!을 중심으로
일본인 학생들-혹은 야쿠자들?-과의 싸움이 끊일 날이 없습니다.

'혁명적으로'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쓰는 열혈 사회주의자 선생님의 아이디어인
"조선고교와의 친선 축구 경기"덕분에,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이들이 인연을 맺기 시작하고요....





이것이 그 티져 영상. ㅇ_ㅇ

실은 어제 빨래 널다가 잠깐 TV를 틀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오다기리 죠 상이 나오길래 잠시 보다가
이 일본인 배우들이 어설픈 한국말(-_-;)을 구사하는걸 보고
흥미가 생겨서 끝까지 보게 되었네요.

이 박치기 1 편은 2004년에 개봉한 작품이고요.
지난 2007년에 그 속편인 박치기 (Love and Peace)가 개봉했다네요.



이즈츠 카즈유키 감독은 재일교포도 아닌 일본인이라는데요.
코미디물로 유명한 감독 답게 전반적인 흐름은 코믹&학원폭력물(?)이지만
여러 장면에서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대사들과
60년대 당시 일본 사회 속의 조선인 교포들의 생활상을
사실감있게 그려낸 한편, 일본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는 영화입니다.



"만약에 말이야, 나랑 코스케군이 오랫동안 사귀다가
만약에 결혼하게 되면, 조선인이 되어 줄 수 있어?"


"돌아가 쪽바리! 너 요도가와 강의 바지락 먹어본 적 있나?
제방에 피는 야생초 먹어본 적은 있나?"

"우리나라에서 모내기 하고 있을때였지..종잇조각을 들이대더니 트럭에 실어버리더군.
할머니는 우셨지. 밭 전부 뒤엎으며 우셨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끌려오면서...바다에 빠져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고향이 텅 빌 정도로 끌려왔다구! 너희들 일본의 어린놈들이 알고는 있나?
몰랐다면 앞으로도 계속 모르겠지. 멍청한 놈들!"

"이쿠마 터널 누가 팠는지 알고 있나? 국회의사당의 대리석,
어디서 가져와서 누가 쌓아올렸는지 알고 있니?"


(라디오방송 PD가, 방송금지곡이라 막으려는 방송국 상사에게)
"멍청아! 무슨 이유가 있든지 간에 부르면 안되는 노래따위 있을리가 없잖아!
이 은하계 어딜 찾아도, 천체망원경으로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거 어디에도 없다고!"


그리고...아무리 봐도 그냥 카메오 출연으로밖에 안보이는 오다기리 죠 상은
"스웨덴에선 프리섹스의 시대가 시작됐대"라며, 남녀간 자유로운 성행위를
'초면에 아무하고나 내키는대로 할 수 있다'로 오해하고 정말로 스웨덴에 다녀옵니다.-_-;;;




이 리뷰를 쓰려고 동영상 편집을 할까 했는데,
유튜브에 이미 일본인들이 영상을 올려놨더군요...

관심 있으신분들은 영화를 구해서 보기 힘드시면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들만 보셔도 어느정도 감상하실수 있을듯.......





참, 리뷰라 해놓고 영화 소개만 해놨네요.

사실 우리나라의 반일감정이라고 하는게, '종교' '정치'얘기 못지않게
논란을 촉발시키는 뜨거운 감자다 보니, 되도록 개인적인 감상은 배제하려고 했더니만...ㅋ -_-


동의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제 생각입니다만,
아시아권 내지는 세계를 기준으로 큰 틀에서 봤을때
반일감정이란것도 하나의 지역감정이 아닐까 하는게 제 견해입니다.

아직도 한국 사회 각계에는 친일파의 후손들이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거사 문제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일본'이라는 이웃나라에 대한 적개심만을 표출하고 있죠..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말보다 영어를 쓰면 더 세련되고 유식하게 보는 풍토,
기업들도 이름을 영어식으로 바꾸고, 방송에서도 프로그램 이름들이 상당수 영어,
상표도 영어, 유행어도 영어...
반면에 일본어는 항상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지탄받습니다.
방송에서 일본어 쓰면 큰일납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간지'라든가 하는 유행어도 나오고;)

일본이 어때서? 일본인 전부가 나빠? 일본 대중문화가 나쁜건 아니잖아? 라고 물으면
기어코 일제 강점기의 얘기와, 위안부 할머니들 얘기까지 나오고 맙니다.

그런데 이렇게 '일본, 쪽바리'에 핏대올리며 흥분하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이나 독도, 동해 등의 영토분쟁, 외교문제에 관심이나 있었을까요.

오히려 이런 광적인 '반일감정'이 뿌리깊게 깔린 정서 덕분에,
정작 지탄받고 처단되어야할 친일파의 후손들은 그 비난의 화살을 피해갈 수 있는게 아닐지.

아직도 경상도니 전라도니 하는 지역감정이 팽배해 있는데도
여전히 그 원흉 박정희는 영웅으로만 기억되고 있듯 말입니다.


정치계, 사회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극우세력이 지탄받아야 할 대상이지,
일본땅에 사는, 일본인 국적을 가진 모두를 가해자로 몰아가서는 안될 일입니다.

중요한것은 그들의 잘못된 역사 인식을 바로잡고, 
과거 전쟁과 침략에 대한 정당한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것이지,
무작정 '일본' '일본인' 전체를 욕하고 비난하는건 그저 감정의 골만 더 깊게 하는게 아닐까요.

일본 내에서도 왜곡된 역사 교육과 과거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이들을 규탄하는
의식있는 일본인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래도 요번에 일본에선 54년만의 정권교체라니...내심 기대가 큽니다.)



사실 이 영화를 보던 중에도, '이런 시대에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
'기타로 평화를 노래하는건 어때요?'라고 답하던 순수하기 짝이없는 코스케 소년의 답을 보고
저조차도 픽 하고 비웃음이 났습니다. 하지만,

Love & Peace 라는 구호가 그저 이름뿐인 공허한 울림이 아니라,

지구상의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가치가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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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무협/단편] 유소협, 비급을 얻다.


이태전, 중원은 피바람에 휩싸였다. 무림맹이 천하를 평정한 지 10년 째 되던 해,

암약하던 사파의 무리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짧았던 태평성대는 종식을 고했다.

 

중독된 이들로 하여금 돈에 대한 염(念)을 걸어, 매일 지전(지폐)을 씹어 삼키지 않으면

 '경제성장(經濟成長), 땅갑상승(當甲上昇)'이라는 여덟자의 저주를 내뱉고

아홉개의 구멍에서 피를 토하며 죽는 저주. 이른바 '돈독(焞毒)'을 앞세운 사파의 위력에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의 이름높은 명문가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뿐이었다.

 

파죽지세로 중원을 향해 세력을 넓혀 오는 사파의 중심 세력, 감나라대추나라당

(疳那裸代醜那裸黨)의 젊은 당주 임연박(姙挻迫)은 왜(倭)나라 출신으로,

성품이 교활하고 손속이 잔인한 인물이었다. 한양성이 함락되던 해에

광화문(光化門)과 청계천(淸溪川) 일대는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변했고,

임당주의 생일에는 숭례문(崇禮門)을 불태우며 비파를 뜯고 시를 읊었다 전해진다.

 

이때, 멸절된줄로만 알았던 정파에서도 각지의 젊은 영웅들이 분연히 일어났다.

이는, 한반도 내륙지방의 대구현(大丘縣)이라는 작은 분지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여보게, 공자, 내 잠시 길 좀 물음세."

 

자신을 부르는듯 한 카랑카랑한 사내의 목소리에 소년은 발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급히 뛰어온 듯, 가쁜 숨을 고르는 사내의 모습은 어쩐지 부엉이를 닮아 있었다.

사내를 돌아보는 소년은 비록 옷차림은 남루하나 비범한 눈빛을 하고 있다.

 

"혹시 이 근처에 무림맹의 지구당(地區黨)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알고는 있습니다만, 무림맹은 이미 쇠락하여 그곳엔 아무도 없을 터인데...."

 

사내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엷은 미소를 띠며 답했다.

 

"공자, 나는 봉화산에 찾아가는 길인데, 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어

한참을 헤맸다네. 노자도 떨어지고, 그저 빈 집이 있으면 하룻밤 묵어갈까 해서 그런다네."

 

사내의 말에, 소년은 옷깃을 바루며 포권을 하고 공손하게 답했다.

 

"하오시면, 후배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 가시지요. 비록 누추하나, 객 한분 모실 방은 있습니다."

 

"정말 그리 해도 되겠는가? 이거 참, 정말 고맙게 되었네."

 

 

두 사내는 거리를 걸으며, 서로를 소개하고 현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소년의 성은 유(柳)가라 했다. 한편 부엉이를 닮은 사내는

충남도 청양현 출신으로, 얼마 전 서거하신 무림맹의 2대 맹주 노공의 조문을 위해

봉화산을 찾아가는 길이며, 성은 이(李)가요, 자는 쿨벙(堀鳳)이라 했다.

 

"헌데, 봉화산에 가려면 남쪽으로 가셔야 할 터인데, 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그러게 말일세. 도중에 객잔에서 감나라대추나라당의 대마두 술성영(戌-개 술, 性迎)을 발견하고

놈의 뒤를 쫓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결국 놓치고 말았다네."

 

"술성영이라, 그 자의 첩이 사는 곳을 후배가 알고 있습니다.

'밤문화'라고 하는 기방이온데, 후배의 집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정말인가? 마침 잘 되었군. 내 그놈을 잡아 반드시 요절을 내고 말겠네."

 

 

두 사내가 의기투합하여 대화를 나누는 사이, 발길은 어느새 유소협의 집 앞에 다다랐다.

그러자, 이웃집에 사는 식태존(食太尊)이라는 소녀가 뛰어나오며 유소협에게 매달렸다.

아마 대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 모양이다.

 

"작은나으리, 큰일 났습니다요. 한 아가씨가....."

 

"뭐라? 한소저가 어찌 되었단 말이냐?"

 

이웃집식태존의 설명에 따르면, 술성영의 직속 사병 부대인 지랄병(指剌兵)이 저자거리에서 

아녀자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면서 "옥수수수염주에 넣을 머리카락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다.

이를 보다 못한 한가장 장주의 여식 한소저가 월녀검법(月女劒法)을 펼쳐 싸우다 그만

술호영의 암수에 당해 생포되고 만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유소협은 분노에 주먹을 쥐었다.

 

"이런 갈아만든 십팔색깔 계좌수표 같은놈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하는 사내에게 이웃집식태존이 사정을 설명했다. 잡혀간 한소저는 유소협의 정혼자로,

평소 머리 숱이 적고 가늘어서, 소중한 모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다.

 

"이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피리 계좌이체 같은 도적놈! 무림맹 초대 맹주를

능멸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죄 없는 아녀자들의 모발까지 노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이선배, 술성영을 처단하겠다 하셨지요? 오늘밤, 후배도 돕겠습니다."

 

"하지마는... 후배님은 무공을 모르는 서생(書生)이 아니신가?

내가 혼자 가서 술성영의 목을 베고, 후배님의 정혼녀를 구출해 올 터이니 여기서 기다리게."

 

"아닙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화염병을 들고 녹각성(鹿角城:현대의 바리케이트와 같은

책(柵)의 일종)으로 돌진하는 심정으로, 함께 가겠습니다."

 

"정히 결심이 그러하다면... 좋네. 하지만 내 보기에 후배님은 수련이 필요할듯 하네."

 

"예,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후배, 소시적 내공수련과 경공법의 기초 지도는 받은 바 있습니다."

 

"어쩐지, 근골의 기본이 잘 잡혀 있다 싶었네. 마침 내가 오래전에 실전된 줄 알았던 비급을

구했는데, 후배에게 맞을지도 모르겠네."

 

유소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 비록 그동안 글공부만 하여 무공을 모르는 서생이나, 천하가 도적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는데

어찌 글만 쓰고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무림맹의 초대 맹주님과 이대 맹주님께서 서거하신 후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시름에 빠졌던가! 오늘 이대협이라는 든든한 협객 동지가 생겼고,

때마침 원수가 눈앞에 나타났으니 이는 하늘이 주신 기회인지도 모른다.

곧고 선한 성품과 연약한 머릿결을 가진 한소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도탄에 빠진 억만창생과 종묘사직을 위해, 

감나라배추나라당의 후안무치한 무리들을 처단하리라!'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괴나리봇짐에서 낡은 책을 꺼내 든 사내는 잠시 망설이는 낮빛을 내비쳤다.

 

"그런데 이거... 솔직히 말해서 별로 권하고 싶지 않네."

 

"어째서입니까? 후배가 배우기엔 벅찬 상승의 무공입니까?"

 

"아닐세. 이 비급에 적힌 내용대로 두 시진만 수련한다면, 후배가 혼자서도 능히 술성영과 그 무리들을

상대할 수 있을걸세. 하지만, 많은 것을... 아주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게야."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다급해진 마음에 유소협은 사내의 손에서 비급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찬찬히 살펴본 표지에는.....

 

"이...이것은..."

 

 

 

 

 ".........규화보전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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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태채무자입니다. - DJ선생님 영결식날 아침에.

독백_일기,잡담 2009. 9. 5. 20:45




서거하신 다음날, 분향소 가던 길.

김대중대통령님께서 노무현대통령님의 분향소를 찾으셨던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다운받아 아이팟에 넣고, 반복해서 들으며 거리를 걸었습니다.


한동안 개그맨들이 따라하는 등 유행이 되기도 했던 그분의 조금은 어눌한 말투,

아니 그때보다 많이 기력이 쇠하셨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분향소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앉아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봤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었습니다.


많지는 않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분향소 주변에는 삼삼오오 모여앉아 대화를 나누는 

민주당 당원들이 보입니다.

(개중에는 아는 얼굴들이 있어, 그간 격조하셨다고 인사를 나눕니다.)





저는 81년 2월생입니다.


광주에서, 민주주의를 사랑하던 분들이 죽어갈때


내 부모는 연애를 하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저는 부산 태생으로 포항에서 자랐습니다.

지금 부산시청, 부산역 분향소 상황들을 보시듯,

그곳 어른들의 보편적인 가르침은 북한=전라도=김대중=빨갱이 였습니다.

나중에 커서 서울이든 어디든 가서도 전라도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지 말아라...

저는 어릴적부터 이런 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대통령선거때 동네 벽에 나붙었던 선거 포스터를 기억합니다.

유독 당신의 사진만이 험하게 뜯겨져 있었고

빨갱이, 전라도놈이라는 낙서가 있었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열 두 살 무렵의 저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제 입으로 '김대중이는 빨갱이라 카더라'라 내뱉었던 일을,

그리고 어른들에게 '니 똑똑타' 칭찬을 들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합니다.






후에 경기도 안산으로 이사와서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경상도 촌구석에서 자라면서 들어 왔던 것과는 달리, 

전라도 사람들은 빨갛지도, 머리에 뿔이 나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강준만 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의 일독을 권하더군요.

그것이, 당신의 진면목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97년, 제게는 투표권이 없었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던, 아주 평범한 경상도 사람이었던 부모님은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 정말로 큰일이 나는줄 아셨습니다. 

김대주이 찍으라니까. 김대주이 빨갱이 아이라니까.

설득은 실패했고, 내 가족친지들은 색안경을 끼고 

나를 '예수천당불신지옥'에 버금가는 광신도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97년 선거에서 당신은 승리했고, 

헌정사상 최초의 민주정부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그날은 너무 기뻐서, 괴성을 지르며 동네 골목을 뛰어다녔습니다.

미친새끼, 우리 집에서 빨갱이새끼가 나왔구나 하는 소리를 

뒤통수로 들으면서도 마냥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저 행복했습니다.

입술 위에 점이 있던 여학생에게 사귀자는 말을 들었을때보다

더 설레고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늘로 날아오를것만 같았습니다.

당신이 TV에 나와서, 이런저런 약속을 하시던 말씀....

내용은 사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얼굴만 봐도 좋았습니다.



당신께서 퇴임하신 후,

신촌에 사는 친구녀석 집에 놀러갈 때면,

밤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사저를 한 바퀴 돌며 

선생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대문 앞에서 큰 절을 올렸습니다.

저희는 이것을 '성지 순례'라 불렀었습니다.

성지를 찾을때마다 선생님의 서재에는 항상 불이 켜 있었고,


'이 늦은시간까지 또 무슨 공부를 하시는걸까'


'아냐 뭔가를 집필하시는걸꺼야'


채 백보도 되지 않는 곳에 내 영웅이 계시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하는 소년들처럼 그렇게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몇 해 전 5월, 망월묘역 참배하러 광주에 갔던 날에는

김대중컨벤션센터 공중화장실에서

'행동하는 양심은 아름답습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마치 10년 전의 첫사랑이라도 만난 듯 두근거렸습니다.





20대 초반의 저는 삐딱하다 못해 악에 받쳐 있었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흔적도 없이 지우고 서울말을 쓰고,

어디서 경상도사투리를 쓰는 사람을 만나면 

연쇄살인범이라도 만난 듯 경계했습니다.


그러다 이따금씩, 경상도 사람이 내 고향을 물으면

나는 이렇게, 그것도 경상도 사투리로 대답했습니다.


나는 강간 현행범을 한나라당이라는 이유로 시장으로 뽑아주는 양심도 낯짝도 없는 부산놈이요.



몇 해가 지나고, 20대 중반의 저는 

경상도에 대한 저주를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어릴때부터 보아왔던 그 멍청한 경상도 사람들,

그 경상도 촌구석에 살면서 평생 몇번이나, 

아니 실제로 전라도사람을 만나본적이 있기나 한건지?

불쌍한 생물들... 그저 입만 열면 정치인 욕만 했지, 

이렇게 나라 망쳐놓은게 자기 자신들이란건 무덤에 들어가서도 깨닫지 못할테지.




김대중 선생님을 평가할때,

'구시대적 정치구조를 극복하지 못한, 권위적 계파정치의 수장'이라는 표현을

저는 굳이 부인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했어야 했던걸까요?


민주주의를 말하면 잡혀가고 죽어가던 시절,

당신의 곁을 지켰던 '동지들'은 그들 스스로의 판단보다는, 

같은 설움을 가진, 의리로 뭉친 이들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대신에, 당신께서 미처 못 이룬 부분을 우리에게 넘겨주시기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우리 시대의 적극적 정치참여는

김대중 선생님께서 다져주신 인터넷을 기반으로 시작되었고,

또 김대중 선생님께서 일궈주신 민주정권의 햇살 아래 자라났습니다.


"깨어있는 시민"의 "행동하는 양심"이야말로

두 분 대통령께서 남겨주신 가장 값진 유산일겁니다.




저는 모태자유 세대가 아니라, 모태채무자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신께 빚을 졌습니다.


조금이나마 갚아볼 겨를도 없이,

저는 종신토록 당신의 채권에 묶인 삶입니다.


당신께서 남겨주신 유산 위에서,

당신께서 끝내 이루지 못했던 부분을 이어받아

당신의 자식들과 함께 이뤄 나가겠습니다.



내 모든 활동의 시작이기도 했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평생의 화두, 지역주의 타파.

부산의 파도야! 광주의 무등산아! 너희에게 넋이 있다면 이 김대중이의 자식들을 버리지 말아다오!

광주에서 콩이면 부산에서도 콩이고, 대전에서도 콩이다!


보스나 스타정치인에 수동적으로 이끌리기보다는

깨어있는 시민 개개인의 스스로의 판단이 이끌어가는 사회와 정당.

이를 위해,

가장 근본적이고도 궁극적인, 범국민적 의식개혁에 동참하겠습니다.



죽는 날까지 행동하겠습니다.

퇴색되지 않는 당신의 뜻을 내 가슴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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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해요. 우리 몫이지요.함께 손을 잡고 튼튼한 연대로.."

독백_일기,잡담 2009. 9. 5. 20:41


"우리가 해야해요. 우리 몫이지요.함께 손을 잡고 튼튼한 연대로.."

첨맘님 팬카페의 한 회원이, 지난밤에 꾼 꿈에서 안희정님이 나오셔서 하신 말씀이랍니다.
요즘 제가 구상중이던 글과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에, 제목으로 빌려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꿈 꾸신 소금눈물님, 그리고 꿈에서조차 좋은말씀 해주신 안희정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yImuk73h0k4$


아시는분은 다 아실, 2002년 대선 막바지였던 10월 21일,

노무현 후보의 희망포장마차 방문 영상입니다.

저도 저 포장마차 안산 왔을때 설거지 좀 했습니다만.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가게 다 팔고 저 포장마차로 전국을 돌면서
선거자금을 모았던 저 소나무 아줌마, 영상에서 노무현 후보가 꼭 껴안아주신 저 아줌마.
노짱 퇴임식날 유시민 손 들어주셨다고,
명계남을 가리켜 '당신때문에 그 몇년 사이에 저렇게 늙어버린 사람은 안보입니까'라며
노무현을 지지했던게 이제는 후회스럽다고 고백한....지금도 국참 활동 중이더군요.)

그리고 초반부에 노무현후보께서 "오늘은 국참이 돈 쓰는 날이네"라고 하신
그 국참은 저 1219국민참여연대가 아니라, 대선 당시 선거운동 조직이었던
"국민참여 운동본부"의 국참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어떤 유시민 지지자들은, '우리가 또 유시민을 노무현처럼 희생시켜야만 하느냐'는 말을 합니다.

우리 때문에, 국민들 때문에 그 가시밭길을 걸어가라고 강요해야만 하는 현실이 잔인합니다...

노짱께서 남기신 '유시민 당신은 정치 하지말고 그냥 책 쓰고 강연 하며 편하게 살라'는 말씀처럼

차라리 이참에 정계은퇴하고 편하게 사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남은 구호는 '유시민 대통령' 뿐입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다 느껴지니까,

그저 유시민만 기다리며 쳐다보고 있을 밖에요.

이런 생각을 며칠째 하면서, 문득 예전의 이 동영상이 생각났습니다.


노무현 후보께서, 중간에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노사모셨던 분들은 기억하실 덕평 수련원에서도 같은 질문을 하셨었고요.


'제가 대통령 되고 나면 여러분은 뭐 하실겁니까?'

'정치를 바로 세우는겁니다. 제가 대통령이 돼도 하는거고, 안돼도 계속 하는겁니다.'

그때 우리들 중 대부분은, 노무현 후보만 대통령 당선시키면 우리 할일 끝나는 줄 알았지요.

꼭 생각은 그렇지 않았어도, 심정은 대부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들 '그때는 당신 감시할겁니다'라고들 했었죠...

사실은, 조직 없고 돈없고 빽 없는 자유인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는 그 시점에서,

그제서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인건데 말입니다.


여기도 있잖아요. 여기 허운나 의원이 있잖아요. (박수)

추미애도 있잖아요. (박수)

또 그랬어요. 정동영인갑다. (박수) 그랬는데, 아니야는 아니고 (폭소)

어제 강력한 다크호스가 하나 떠오르더라고...문성근!

그 친구는 정치 안할것 같애. 그게 고민인데, 사람은 있더라고.

그러니까, 걱정말고 갑시다.

내가 떨어져도 밀어주는데, 걸리면 오죽 잘 밀어주겄나.

(중략)

아무도 없으면 나도 굴복해요. 근데, 있다 이거야.

많이 있거든요. 이미경. (박수)

꽉 있다 이거에요 우리도. 옳지요?

사자연대 안해도, 그야말로 호랭이 잡을 군사들이 꽉 있으니까. 갑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여러분이 하는겁니다.

누구 누구 했지만,

여러분이 있으니까 누구 누구지,

여러분이 없으면 누구 누구도 없습니다.


그외 주옥같은 말씀을 많이 하셨던 영상입니다. 한번쯤 꼼꼼히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영상에 나오는 저 국회의원들의 향후 행보를 생각하며 표정을 관찰해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정동영의 똥씹은 표정...아마 이때쯤 "노무현은 망했다 줄 잘못 섰다" 생각하는 중이었을겁니다.
그리고 소개받지는 않았지만, 노짱을 묵묵히 따르며 많은 역할을 해내신 안희정님의 모습도 보이네요.


여러분이 없으면 누구누구도 없습니다.....

바로 이 말씀이었습니다. 요 며칠간 제 뇌리에 맴돌던 진리의 말씀.

그리고, 회원님의 꿈속에 나타난 안희정님의 말씀

"우리가 해야해요. 우리 몫이지요.함께 손을 잡고 튼튼한 연대로.."

맞습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참여정부 5년, 노무현대통령께서 이루신 업적이 많고 많지만

한편으로 보면, 참 인기없고 힘없는 대통령이셨습니다.

조중동을 위시한 언론권력에 놀아나는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소위 '지지층'이라는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하셨고,

국회에서는 한나라당은 둘째치고 여당이라는 의원들조차 제대로 협조를 안해줘서

좋은 정책, 좋은 법안 하나 마음대로 통과시킬수 없으셨고,

과거 구시대 대통령들의 수족이 되었던 검찰과 국정원을 해방시켜주자 마자

주인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기 시작했고,

게다가 지자체 단체장들도 전부 한나라당...

정치란 대통령 혼자서 바꿀 수 있는게 아니었죠.

그럼에도 우리는 '노무현' 한사람에게 모두 맡겨놓고,

그가 초인이 아니었다고, 조중동과 대기업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고

언론에 보도되는 것이 왜곡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습니다.

또 지금 우리는 차기 대통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유시민, 혹은 이해찬이나 안희정, 또는 다른 어떤 좋은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또 그에게만 모든 짐을 맡기고 '알아서 잘 해보시라'고 우리는 뒷짐 진다면,

우리나라의 정치가 얼마나 많이 바뀔 수 있을까요?

대통령 혼자서 언론과 재벌 기득권 카르텔과 맞서 싸워 이길수 있다는 기대는 어렵습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생겨날 지도 모릅니다.

지지하는게 아니었는데, 실망했다... 나는 이제 반노다 했던 사람들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돌아서는 사람들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노짱께서 말씀하신 것이 '시민주권운동'이 아니었을까...생각해봅니다.

이미 시대는 80년대, 김대중대통령과 같은 영웅적 정치인이 나타나서

자신의 카리스마로 야권 민주화세력 전체를 이끌던 시대가 아닙니다.

내가 지지해서 대통령 만들어줬으니까, 주변사람들 표도 모아줬고 후원금도 냈으니까

나는 할일 다 했다고 외면할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주인으로서,

우리 모두 각자가 '대통령'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우리가 좋은 정당, 좋은 정치인을 찾아서 지지하고, 혹은 직접 만들거나 참여해서

우리 국민들의 뜻이 '의회'로 제대로 전달되는 진정한 의회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신당'에 참여하기를 결정했습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제가 신당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또 뭘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 손 하나 더 보태는 심정으로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고, 당내 쇄신을 위한 고민을 하시는 분들도 계실겁니다.

또 시민광장이나 대장부엉이, 아나요, 시미니즘과 같은 팬클럽, 팬카페에서도

해 주어야 할 역할이 있고, 사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들 계십니다.

우리 시대에 걸맞는 좋은 인물들을 발굴해내고(조국 교수님같은분들)

강연회와 같은 자리를 마련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넓히는 일,

좋은 정치인을 찾아서 리플북 전달이나 후원금 모금 등으로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일 등

우리들 팬카페에서 끊임없이 해주어야 할 일들입니다.

거리에서 1인시위를 하고, 조중동 언론권력의 폐해에 대해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진알시처럼)

서명운동을 하거나 바자회를 여는 등 각종 행사를 통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는 일들도 중요합니다.

(사실 이런 부분들은 다들 이미 잘 알고들 계시고, 또 실천하고들 계시니,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 이상 이러니 저러니 주워섬기는건 별 의미가 없을겁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모든 고민과 책임과 판단을 위임하기보다는

내 스스로 판단하고 내 스스로 움직여야 합니다.

꺠어있는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영원히 끝나지 않을' 신당 관련-분열이니 통합이니 연대니 하는 논쟁일랑 접어두고,

함께 합시다. 유시민 팬클럽, 이해찬 팬카페, 안희정 팬클럽,

그리고 신당과 민주당, 또 진보진영과 재야 민주화운동 세력까지.

'시민주권모임'에서 함꼐 손을 잡고 튼튼하게 연대하고,

또 각자의 위치에서 할 몫을 해내는 '나라의 주인'이 됩시다.


"우리가 해야해요. 우리 몫이지요. 함께 손을 잡고 튼튼한 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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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란 모름지기 그립감이 좋아야 하는 법.

독백_일기,잡담 2009. 3. 18. 19:27

이제 주방일도 곧 한달이다.

처음엔 다리아프고 발아파서 서있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적응되니 견딜만하다.

문제는 손이 붓고 등이 아프다는것...

손은 퉁퉁부어서 주먹을 쥘수가 없고,
힘이 안들어가는 오른손 대신 왼손을 좀 썼더니
검지손가락 옆 주름이 찢어졌다.

아....

왜 이모양이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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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 Stardust / [일기] 2009 03 11

독백_일기,잡담 2009. 3. 12. 18:34

스타더스트.


내가 원래 판타지물이라면 환장을 한다.
꼭 드워프라든가 엘프, 드래곤 같은 종족이
나오는것만 아니라, 마녀, 마법, 기사 등등의
'비현실'적인 것들이 참 좋더라.
덤으로 무협지도 참 좋다...
(머 이렇게 말하면 엄청 무협지광에 판타지광 같지만,
 실제로 읽은 무협지라곤 김용선생의 영웅문 3부작 뿐이고
 판타지도 읽은게 별로 없다.)

스타더스트는 그럭저럭 볼만했다.
예전에 필리핀에서 영화관 갔을때(무슨영화였더라

;) 예고편 보고서, 아 저거 꼭 보고싶다 했었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조금은 진부한

(판타지라기보단 멜로물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다만 아쉬운점이라면, 여자 주인공이...
뭐...내가 얼굴 따지는 편은 아니지만;
왜 자꾸만, 남자같다는 생각이 들까-_-;

필리핀 보라카이에서 만났던 트랜스젠더와 너무 닮아서일까;;;;
하여간 이거 하나는 보는 내내 아쉬웠다..

 

-----

일자리를 구하고 나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매주 꼬박꼬박 500달러(50만원?)씩의 수입,
물론 방세 100달러, 생활비 기타등등 잡비가
빠지긴 하지만서도..

일도, 이제 3주째가 끝나가는..벌써 목요일이다.
이틀만 더 일하면 주말이다만,
어느정도 일이 적응이 되니, 힘들기보단 좀 지겹

달까...벌써 싫증인가. 내 고질병이다. 쉽게 싫증

내는...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겐 참을성이 더 필

요하다.

사실 막상 일자리를 구하고 나니, 주말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지난주처럼 하루종일 잠만 자는

일은 하지 말자.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하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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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자! Marica! Goja! 마리까!

독백_일기,잡담 2009. 3. 8. 23:07

브리즈번에서 두번째로 얻은 쉐어하우스는
한국인과 콜롬비아인이 함께 사는 아파트였다.

처음엔 한국인의 비율이 조금 더 많았는데,
(총 5명 중 한국인 남1 여2 콜롬비안 남 2)
한국애들 귀국하고 농장가고.. 멤버 바뀌면서
이제 한국인은 나 혼자만 남게 되었다.

아마 다음주에 디에고라는 녀석까지 나가고 나면,
마스터룸(페루인 커플), 세컨룸(콜롬비안 남, 태국인 여)
나만 빼고 전부 커플인 쉐어하우스가 된다. 덜덜...-_-;


뭐 그렇게 된다 해도 그럭저럭 크게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브리즈번에서 처음 살았던 쉐어하우스는
(대부분의 한인 쉐어가 그렇듯) 전부 한국인이었는데,

카지노 중독에다 습관적으로 돈빌려쓰려 하는건 그렇다치고
그럼에도 '한국인과 끼리끼리 어울려야 하는'
그놈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참 부담스럽고 싫었다.

어딜 가든 무얼 하든,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리는데
끼지 않고 겉돌면 꼭 씹히게 마련인.

내 호주 생활의 주 목적이 꼭 '영어'는 아니지만,
굳이 이런 해외까지 와서 한국인들끼리만 어울릴 이유는 없지 않나 싶다.

한국인 친구라면 고교동창인 민선이 영은이 정도로 족하고,
(첫 쉐어집에서 친해졌던 정임이는 농장일 구한다며 번다버그로 떠나버렸고,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지연이는 병원에서 약 잘못 처방해준것때문에 내일 비행기로 귀국.)

그 외에 현지에서 사귄 친구라면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제롬,
일본인 마사, 지금 일하는 곳의 중국인 친구들 등...

아마 위의 둘을 제외하면 내 주변에 한국인은 더 이상 없을 듯 하다.



때문에, 최근 새 숙소를 알아볼까 생각하면서도 갈등이 많았다.

일단 시티 근처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쉐어라면 거의 대부분 한인 쉐어.
외국인 쉐어를 선호하는건 대다수의 한국인 워홀러가 마찬가지겠지만,
(사실 외국인 쉐어에 거실쉐어가 있는 곳도 흔치 않거니와)
앞서 얘기했듯 '한인 기피중'인 내게는 적절한 선택이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이곳이 시티에서 살짝 멀고
(도보로 15분. 그렇게 멀지는 않지만 출퇴근 시간은 상당히 아깝게 느껴진다.)
둘쨰로 인터넷을 내 스스로 사서 써야 한다는 것이며,
굳이 더 꼽자면 셋째 이유는, 앞으로 두 커플의 등쌀에 눈치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


뭐 일단 당분간은 이대로 지내기로 했다.
어차피 평일은 하루종일 일해야 하고,
주말에는 잠을 자거나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거의 내 방처럼 쓰고있는 베란다에는 바람 잘 불어 시원하고,
시티 거실쉐어 치고는 개인키도 지급 되겠다,
뭐 이정도 환경은 대략 나쁘지 않다.



쓰고보니 제목과는 별 상관없는 일기글이 되었네.


다음주면 새 집으로 나가는 디에고군에게
예전에 살던 한국인 여자애들이
한국어 욕만 잔뜩 가르쳐줬다.

이눔시끼, 니미씨발, 개새끼, 조까 등등.

거기다 어제 애들레이드로 떠난 한국인 남자애도
그에게 '고자'라는 말을 가르쳐줬는데,

이후로 그는 나를 '고자', 나는 그를 '마리까(스페인어로 고자)'라 부르고 있다.


디에고 이녀석도 참 딱한 녀석이다...

녀석이 처음에는 세컨룸에서 살았는데,
세컨룸의 또 한명은 조지 라는 녀석으로,
이틀이 멀다하고 태국인 여친을 데려와서 자면서
밤마다 소음을 만들어내는 녀석이다.

(내가 처음 입주할때도, 그때 귀국하던 한국애가 내게 귀띔하길
'다른애들은 다 좋은데, 쟤는 그런 점에서 좀 뻔뻔해서
 마음에 안든다. 몇번을 얘기하고 주의를 줘도 계속 데려온다'며.)

디에고가 자리를 비웠을때는 어김없이,
심지어는 디에고가 자고 있을때에도 해-_-대니,
결국 녀석은 아래층에 사는 라파엘(전에 이곳에 살던 친구)의
방에 가서 잠을 자는 일이 잦아졌다.

몇 주 후, 마스터룸에 살던 두명이 동시에 나가면서
디에고는 마스터룸으로 방을 옮겼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그의 새 룸메이트는 페루인 미구엘.
그역시 녹녹치 않았다.
조지만큼 자주는 아니었지만, 만만치않게 데려와서 자는 여자친구 모니카.
게다가 이친구는 나이도 있어서(서른 둘)
여자친구를 데려오면 거의 부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조지와 지낼때와는 사뭇 다른,
한층 업그레이드 된 압박감.

이후로 모니카는 놀러올때마다
맨 먼저 나를 붙들고 '지금 디에고 방에 있냐'고 묻는게 일과가 되었고,
디에고는 디에고대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쉬려는데
마스터룸 문이 잠겨있으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고는
'지금 미구엘 여자친구 데려왔냐'고 내게 묻는 일과가 생겼다.

결국 세컨룸의 새 멤버가 떠나면서
디에고는 세컨룸으로 돌아왔지만,
여기나 거기나.

어제도 베란다에 있는 나한테 묻더라.
'지금 조지, 여자친구랑 그거 해?'
'글쎄, 모르겠는데. 난 신경 안 써서.'

뭐 이제 다행히,
라파엘이 새 렌트를 얻으면서
다음주면 디에고도 빠져나간다지만...

난 정말로 완전히 신경 끄고 살아야지.
두 커플이 만들어 내는 소음은,
거실쉐어인 나에겐 너무나 버겁다.

어제는 주말이라고,
아무도 없는 집에 나까지 자고 있으니.

자다 일어나 밥 해 먹는데,
마스터룸에서 들려오는 모니카의 비명소리란.


에라, 나도 하나 만들어서,
데려와서 거실에서 해버려?


어쨌거나,
아디오스, 마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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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반구의 외국인 노동자. 브리즈번 시티잡 수행중!

독백_일기,잡담 2009. 3. 8. 22:38

으하하. 안녕히들 지내셨습니까.

한동안 인터넷 이용이 뜸했던 이유는,

바로바로, 일자리를 구했기 때문입니다!  > ㅁ <)/

 

요즘 한국도 경제상황이 지난 IMF때 못지않다지만,

이곳도 취업난이 장난이 아니라서요.

외화벌이는 커녕, 서너달씩 일자리 못구해 귀국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던데

저는 두달이 채 되기 전에-그러니까 이제 2주 되었네요.

쇼핑몰 푸드코트(홈플러스같은데 있는거랑 비슷해요)에 있는

중국요리점 부엌데기로 취직했습니다.

가게 이름은 City Asian Express! 아마도 도시동양특급?

(영화제목들을 봐도 그렇지만, 중국사람들 '특급'이란 단어 되게 좋아하나봐요.)

 

월-금 주5일 근무, 아침 8시반부터 저녁 6시반까지, 매일 10시간을

(금요일은 9~10시까지- 대략 12~13시간)

하루종일 서서 잠시도 앉아 쉴틈없이 일하는게 빡시긴 합니다만..

 

하는 일은, 거 중국집에서 쓰는 커다란 후라이팬 아시죠. 둥그런거.

제 몸통만한거 휙휙 돌리면서 볶음밥 만드는거...(이젠 제법 능숙해요)

탕수육같은 튀김 만들고, 밥짓고 야채 썰고(이제 칼질도 제법 잘한답니다 ㅋ)

그리고 설거지... 덕분에 항상 퉁퉁 부어있는 손이 주말까지 풀리질 않네요.

오죽하면 양치질할때 칫솔 쥐는게 힘들어서 손이 발발 떨립니다. ㅋㅋ -_-

 

급료는, 하루 100달러! (한화 대략 10만원.)

여기가 후한편은 아닌데, 그래도 생활비 하고 먹고살만은 해요.

돈도 많이는 못 모아도... 한국 돌아갈때쯤 천만원은 넘게 들고가지 않을까...

 

 

참....제가 생각해도 운이 무지 좋았다고 봐요...

원래 중국인 음식점에선 중국인만 쓰는데,

(다른데선 중국어 할수있냔 말만 묻곤 이력서도 안받고 퇴짜)

여기 사장은 대체 뭔 생각으로 한국인을 뽑았는지 아직도 신기해요 -_-;

 

어떤 기대였는진 모르겠지만, 제가 묵묵히 성실하게 일 잘 하니까

제법 사장 마음에 들었나봐요. 주방장 아저씨가 거의 매일같이 하는 말,

'사장이 너 좋은놈이래'

제가 뭐 이바닥에서나 교활하고 냉혹한(?)본색을 드러내는 편이지,

보통 일할땐 우직하고 성실한 스타일인지라..

힘든일도 군말없이 해내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인걸 이제 아니까

사장도 이젠 웬만한 일은 별 터치없이 그냥 위임하고, 어지간한 실수도 대충 웃고 넘기네요.

일하는 분위기도 서로 친한 친구나 가족같은 느낌이라, 농담 주고받으며 하구요.

 

가끔 사장이 일 시킬때 'you first, fry this pork and chicken, and then

cut chilly, and cut ham, and cut your little leg.' 'yes.. what what??'

"일단 이 돼지고기랑 닭고기 튀김 하고,

그담에 칠리고추 썰고, 햄 썰고, 네 xx도 썰어." "네넹?-_-;"

 

'when you choped the chilly, you better wash your hands before going to toilet.

if not, your little leg will be very hot.' (직원들 폭소)

'칠리고추를 썰었을땐, 화장실 가기 전에 꼭 손을 씻도록. 안그럼 너 xx가 엄청 매울거다.'

(사장님 참, 리틀렉 조크 엄청 좋아합디다. -_-a)

 

'hey hey, Yong, use your two hands. your mama and papa gave you two hands, not only one hand.'

"이봐 용군, 양손을 써. 자네 엄마 아빠가 한손만 주신게 아니고 손 두개를 주셨잖아."

 

아, 저도 농담 하나 했었죠.

(열심히 닭튀김을 만들면서 한마디) 'Boss? am I kitchen hand? or chicken hand?'

주방 식구들 전원 격침! 역시 중국인에게도 통하는 말장난 개그 한발 작렬! -_-;

 

뭐 보시듯, 중국인들도 영어 그렇게 잘하진 않아요. -_-;

그나마 사장이야 발음이 또박또박해서 알아듣기 쉽지...

그래도 의사소통하는덴 별 문제가 없네요.

가끔은 듣고있으면 재밌어요. 중국어 억양 그대로에 단어만 영어... ㅋㅋ -_-;

 

참, 여기선 제가 Gally 라는 영어이름을 썼었는데,

아무래도 중국인들은 이름 형식이 비슷하니까,

제 본래 이름 鄭俊容이라고 얘기했더니

그냥 요즘은 '용아~' '아용~(兒容)' 이라고들 부르네요.

 

주방 사람들도, 일 시작하고서 첫째주엔 별 얘기들이 없더니,

둘째주가 되니깐 이젠 뭐 귀찮을정도로 다들 잘해주네요...

아마 처음엔 '쟤가 얼마나 버틸까'했겠지만, ㅋ

저도 나름대로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있는 놈인지라!!

일할때 꾀 안부리고, 힘들수록 오히려 더 서둘러서 일 찾아서 스스로 하니

시간도 잘 가고 좋더군요..

 

특히 주방장 아저씨...제가 요즘 쓰부(사부님)라고 부르고 있는데

자기가 한국 드라마 무지 좋아한다면서, 한국영화나 드라마 DVD 없냐고...

요즘은 출근시간보다 한 30분 일찍 나와서 자기랑 얘기좀 하자고 하더니

아침 안먹고 오면 커피랑 토스트도 사주고... 퇴근할때도 사장몰래 음식 싸주고..

 

아, 정말로 중국인들이 한국인 엄청 좋아하더군요...

백인들한텐 은근히 무시당하는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같은 동양인들 중에선 일본인 못지않게 한국인도 제법 알아주더라구요. ㅋ


 

예, 뭐,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는 보고싶은 사람 못 보는거만 빼면,

아주 보람있고 행복한 생활입니다.

   

 

참. 요즘은 일이 점점 손에 익으면서,

손으로는 일 하면서 머리로는 잡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도킹 온 오븐스 도어'라든가 '쿡 썸바디' 이런식으로

노래 가사 바꿔서 불러보는 재미도 있더군요.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도 역시...

'하루 100달러를 버는 난~ 사람이었네, 이 요리가 되어, 팔려왔지만~' -_-;

아, 재미없어라...-_-;

 

참, 또 한가지. 역시 세계적인 불황이라 그런지,

이곳 호주 음악들도 가사가 만만치 않아요.

Fakers 라는 밴드의 Voodoo Economy 라는 노래 가사는 이래요.

'you got a kitchen hand job, you are the king of this city!'

완전 제 얘기같지 않습니까. 냐하하.

그럼 정말로 이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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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요리의 고기 조리법에 문제가 있다?

독백_일기,잡담 2009. 3. 8. 22:34


어제(토) 있었던 일이다.
여기서 사귄 이탈리아계 프랑스인 친구 제롬 녀석과
기분 좋게 클럽에서 놀고, 술도 한잔씩 하고 집에 오던 중에,
녀석의 복통의 원인이 된 '아시아 쇠고기 요리'가 발단이 되었다.

녀석의 주장은 이랬다.

"아시아의 요리는 문제가 많다. 특히 아시아인들의 고기를 조리하는 법이 틀렸다.
특히 중국 요리의 경우, 고기를 완전히 익히지 않아 박테리아가 남아있거나 해서
복통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우리 호텔(호텔에서 스튜어드 일 하는놈임)에도
손님들이 아시아 요리 먹었다가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살짝 열받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문화적 차이(difference)이지, 문제(problem)라고는 할수 없다.
어느나라나 고유의 식생활 문화가 있는거고, 그에 따라 요리방식이 다른거다.
경우에 따라 음식을 날로 먹거나 덜 익혀 먹는 나라도 있는건데,
오히려 내 생각엔 너네 프랑스 음식이 고기 덜 익혀먹는게 더 하지 않냐?
난 예전에 유럽식 스테이크에 레어, 미디엄, 웰던 있는거 처음 알았을때
레어나 미디엄에 핏물 흐르는거 보고 끔찍하다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중국음식은 너무 익히고 기름진게 문제 아닌가?"


그러자, 자신의 논리는 자신만의 주장이 아니라,
전 세계 각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견해라고 하는거다.

"보편적인 견해라니? 정확한 근거가 어디에 있는데?"

인터넷에서 봤단다. -_- 이눔시키... 

"야, 인터넷에 올라오는 말은 전부 진리냐?
보나마나 유러피안 아니면 아메리칸이 쓴 거겠지.
어느 아시아인이 그 주장에 동의하겠냐?"


"아시아인이고 유럽인이고 아메리카인이고 간에,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요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라는 데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있는 '고기 조리법의 룰'이 있다.
아시아인들은 그 '룰'을 모르기 때문에 고기 조리에 문제가 생기는거다."


"그 룰은 누가 정한건데? 너희 유럽인들이 만든 룰이지,
우리는 우리 나름의 룰이 있는거고, 그건 '다른'거지 '틀린'게 아니지.
틀렸다고 하는건 너희 유럽식이 무조건 옳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오는거고.

그럼 너는, 코카서스 인종이 아시안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거냐?"

 

"아니, 난 인종을 얘기하는게 아니라 음식 조리법을 얘기하는거야."

 

"결국 그건 문화적 차이라니까.
예를 들어볼까.
이곳 브리즈번에 사는 호주인들은 '스시'를 아주 좋아하지.
그런데 원래 일본이나 한국에서의 오리지널 스시는,
잡자마자 조리하지 않고 날로 먹는게 진짜 스시야.

만약 이곳 호주인들이 그 진짜 '익히지 않은'스시를 먹는다면
어떻게 될것 같냐? 당연히 복통에 걸리지!

우리나 일본인은 일상적으로 날것을 먹으니까 면역력(immunity)을 가지고 있는거고,
너희 유럽인이나 아메리카인의 음식도 그런 경우가 있겠지.
우리 아시아인이 먹으면 복통을 일으키는 그런거.

그건 어디까지나 '차이'이지, 절대로 어느 쪽이 옳거나 틀렸다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냐.
위생상의 문제를 말한다면, 광우병의 경우는 어떠냐? 원산지가 유럽 영국 아니던가?"

 
*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스시'란,
김밥의 일종(캘리포니안 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에
마요네즈 양념과 살짝 익힌 회를 집어넣은 음식으로
호주 현지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있다.
시티 골목 골목마다 스시바가 있고,
주로 동양인이 영업을 하지만 정작 일본인보다는 한국인, 중국인 업소가 많다.

 

한 30분간의 열띤 논쟁은 결국 결론을 맺지 못하고...

제롬 녀석은 끝까지 '나는 유럽인이 아시아인보다 우수하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아시아인의 고기 조리법이 틀렸을 뿐이다' 라는 모순된 주장으로 일관,

그래서 그냥 이렇게 내뱉고 말아버렸다.

"그럼 너 앞으로 아시아 요리 먹지마. 죽을때까지 절대로 다시는 먹지마.
나도 그 멍청한 프랑스요리 다시는 안먹을테니까."



아...영어를 좀 잘 했더라면,
그의 주장에 어떤 모순이 있는지,
그가 무시하는 아시아 음식의 우수성,
특히 김치라는 음식이 얼마나 과학적인 음식인지,
등등을 말할 수 있었을텐데.

회화능력의 차이라는건 가끔 이렇게 답답한 상황을 만들때가 있다.
특히, 대답하기 까다로운 질문에 답변을 생각하느라 뜸을 들이면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러는 것으로 오해받을때가 상당히 열받는 경우고.

어느나라나, '목소리 크고 말 빠른 놈이 이긴다'는건 불문율인건지,
문법 개판이고 발음 엉터리여도,
먼저 빠르게 따발따발 늘어놓는놈이 훨씬 말빨이 센 것은 어쩔수 없나보다.

머리속에서 문장을 완성해야 비로소 입밖으로 꺼낼 수 있는것이
학원에서 영어 배우는 한국인들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고.


여하튼,

정말로 그런 주장, 아니 학설이라는게 있기나 한건가?
"동양권 요리의 고기 조리법은 문제가 있다" 라는게?
일단 검색은 해봤지만...

혹시 방문자 중에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는분 계시면 리플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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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권 매장 음모의 배경.

독백_일기,잡담 2008. 12. 21. 06:13

작성일 : 2005.06.18 08:17




수년 전부터 전인권과 이은주는 친분이 깊다고 알려져 왔다.

 

언제 누구의 소개로  만나서 알게되고, 나이를 초월한 우정이니 뭐니 하는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들 들어서 알고있는 내용일테니 생략하자.

 

물론 일각에서는 '친구 이상의 관계가 아니냐'는 의문도 있었고,

'연예계나 기자들 세계에선 아는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는 설도 있지만

한쪽은 이 세상에 없고 한쪽은 네티즌들의 '죽이기'에 매장 직전인 상태니

그부분에 대한 추측도 잠시 접어두자.

 

어쨌거나, 두사람이 수년간 꽤 친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이점만을 두고, 지난 '보도'들로 추리할 수 있는 내용들만을 살펴보자.

 

 

 

# 한겨레 칼럼 3월 4일자 "죽은자 보다 산 자" 中 -

 

자살하기 직전에 가수 전인권에게 보냈다는 문자 메시지 얘기였다. “눈이 내리고 있어요. 이 눈이 모든 걸 덮어줄 거예요.” 그런데 결코 고인의 바람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저녁 뉴스를 보면서 알았다. 그녀의 옛 애인은 장례식장에 예전에 고인에게 받았던 십자수 액자까지 들고 나타나서, 내가 당사자라면 사람들에게 절대로 알리고 싶지 않을 과거의 사적인 시간과 경험까지 들춰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문링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36&article_id=0000007560&section_id=110&menu_id=110)

 

 

# 세계일보 2월 23일자 "여배우 벗어야 영화 된다?" 中

 

배우 이은주씨의 충격적인 자살 원인이 영화 ‘주홍글씨’의 과다노출 때문이라는 설이 제기되면서 한국영화의 여배우 노출 상품화 풍토가 도마에 올랐다. 이씨는 유서에서 노출 연기에 대한 심적 압박을 드러내고 있다. “왜 내게 그런 책(시나리오)을 줬는지, 왜 강요를 했었는지” “매일같이 되뇝니다. 일년 전 오늘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자존심도 바닥을 쳤고”라고 씌어 있다. -중략-

평소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영화 촬영 당시 이씨와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는 가수 전인권은 “벗는 것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전했다. ‘주홍글씨’에서 이씨는 전라로 등장하는 정사신을 촬영했으며 트렁크에 갇혀 피범벅이 된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 연기를 했다.

(원문링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2&article_id=0000082053&section_id=106&menu_id=106

 

# 연합뉴스 2월 22일자 "전인권 '이은주는 노출 문제로 괴로워했다'" 中

 

평소 이은주와 친분이 두터웠던 ''록의 대부'' 전인권은 그의 자살 소식을 듣고 믿기지 않는다며 몇번이고 "사실이냐"고 되물었다. 22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이은주의 소식을 접한 그는 "정말 자살한 게 사실이냐"며 몇번이고 되물은 이후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영화 촬영 당시 이은주와 전화 통화를 자주 했다는 전인권은 "벗는 것 때문에 괴롭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서에 어떤 이야기가 씌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전인권은 "둘이서 무언가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는데 이렇게 떠나다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원문링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1&article_id=0000920339&section_id=106&menu_id=106)

 

 

 

이은주의 자살 사건을 검찰과 경찰측에서는 단순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유서의 내용으로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수 있는것은

영화 제작사의 강요로 노출연기를 계속 해야만 했다는것이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개월 후, 전인권은 책 발간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게된다.

 

 

# 조선일보 6월 9일자 "세상과 부딪치기보다 끌어안고 싶어" 中

 

―책 제목 ‘걱정 말아요, 그대’는 당신 4집 앨범의 대표곡 제목이기도 한데.

“맞다. 그런데 이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좋아한 사람은 죽은 은주였어….”

묻고 싶었던 여배우 이은주 이야기는 그가 먼저 꺼냈다. 잠시 말이 끊겼다. 책 앞부분의 전인권 글이 떠올랐다. “책을 낸 지금, 은주가 있었다면 ‘애쓰셨어요. 전인권 만세!’ 문자 메시지 하나 왔을 텐데.”

(원문링크 -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23&article_id=0000131270&section_id=102&menu_id=102)

 

여기서 주목할 점은,

같은날 연합뉴스의 인터뷰 기사 '걱정말아요 그대 출간하는 전인권'과,

마이데일리의 '전인권의 7080라이프!, 걱정말아요 그대 출간' 이라는 기사 등에는

이은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틀 후인 6월 11일자 경향신문 "전인권 옛날 그리워 책 한권 썼습니다" 中

 

-항상 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몇 년 전 젊은 여성과 연애를 한 적이 있다. 정말 잘하려고 노력했지만, 갭이 좁혀지지 않았다. 젊은 애가 재테크 얘기를 하고, 내게 가르쳐주기도 했다. 반면 (이)은주는 그런 게 없고 소박했다. 얘기 한마디를 해도 재밌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연방 다른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전인권은 모든 것을 떨치고 17일 발리로 출국해 1주일간의 휴가를 즐긴다. 운이 좋은 관광객은 어느 호텔의 클럽에서 전인권이 부르는 ‘예스터데이’ ‘이매진’ 등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인권은 “지난번에도 호텔 매니저에게 얘기하고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반응이 ‘죽여줬다’. 그래서 디스카운트도 해줬다”며 웃었다.

 

이후로도 14일까지 전인권은 '가수권리찾기협의회' 관련 기사에만 등장,

이은주와 관련된 기사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문제의 6월 15일,

 

전인권, “이은주와의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었다” 마이데일리 [연예]  2005.06.15 (수) 오후 9:20
네티즌 경악 "전인권 고백은 이은주를 두번 죽이는것" 스타뉴스 [연예]  2005.06.15 (수) 오후 11:01

"전인권 얘기 말도안돼...은주어머니 너무 충격받았다" 스타뉴스 [연예]  2005.06.15 (수) 오후 11:14

 

위의 기사들을 시작으로, 문제의 전인권 이은주 연인설 발설 파문(?)은 시작된다.

 

네이버 메인에서 뉴스로 검색해보면 아주 몇시간, 아니 몇분 단위로 관련 기사들이 주르륵 쏟아질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들의 출처는 대부분 마이데일리, 스타뉴스, 조이뉴스24, 고뉴스 등

인터넷 스포츠 찌라시들이다.

 

특히 마이데일리..아는사람들은 아주 잘 아는 악질적인 낚시질 전문 찌라시다.

 

'마이데일리 전인권'으로 검색해보라. 과연 기사가 몇개나 나오는지..

그 기사들 전부가 '강승훈, 송일섭'이라는 기자들이 도배하듯 써댄 소설들이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

과연 마이데일리의 강승훈 기자는 왜,

6월 9일 기사를 쓸 시점에는 '이은주'건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만 6일이나 지난 15일에 와서야 터트리기 시작한걸까?

 

 

예전부터 '스포츠신문'의 허위성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스포츠신문'인 이름과는 달리

지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예인 가십성 기사들은

99.9%가 추측성이거나 소설, 아님말고식의 흥미위주 기사였고,

어쩌다 '특종'이라고 터트리는것 역시 '연예계 추문' 류의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로 먹고사는 부류인 가치없는 매체임을 누구나 아는 바,

스포츠신문은 신문 취급을 하지 않는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인터넷 스포츠신문들은 그 도를 넘어섰다.

 

네이버 메인의 '뉴스'란에 당당히 올라오는 '마이데일리'를 위시한 그 '인터넷 신문'들.

궁금하면 어디 한번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보라. 마이데일리  http://www.mydaily.co.kr

 

과연 이게 신빙성 있는 기사를 쓰는 권위있는 보도지인가?

아니면 흥미위주 쓰레기 기사로 먹고사는 스포츠찌라시인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에, 과연 팩트는 몇%나 섞였을지가 궁금한

한껏 부풀려지고 뻥튀겨진 왜곡기사로 낚시질 하면

'냄비 네티즌'들은 우루루 몰려와서 열심히 리플 달아주고 퍼트려준다.

그 '힛 수'와 '리플 수'로 먹고사는게 이들 '인터넷 찌라시'인것이다.

 

허위보도로 문제가 생기면? 모른척 넘어가면 그만이다.

어차피 냄비, 붕어 네티즌들은 2~3일만 지나도 잊어버린다.

 

자신들이 흥분하고, 마치 정의의 심판자라도 되는 양 열심히 욕질해대던

그 기사의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건 관심조차 없으니까.

 

사실 이런 찌라시의 기사들이 네이버 홈에 버젓이 올라오는것 조차도 당연한 이치다.

네이버 역시, '힛 수'와 '회원 수'로 먹고사는 포털사이트이니까.

 

이번 '전인권 이은주' 사건만 해도,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기사와 게시물들이

네이버 카페로, 네이버 블로그로 퍼다 날라졌고, 네이버 지식검색에도 한 몫 톡톡히 했지않은가.

 

 

......................

자,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찾았다면

당신도 한번 냉정하게 추리해보자.

 

이번 전인권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이은주의 자살 건은 (검찰과 경찰 측에서는 단순 자살로 사건 종결했다고 하지만)

어찌됐든 '노출 연기'를 강요한 영화 제작자측과 소속 기획사측에

가장 큰 책임이 있었다는 점을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6월 9일자 보도와 15일자 보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마이데일리 등에서 '전인권 발언'을 본격적으로 부풀려서 써대기 시작한 시점에

마치 기다렸다는듯 '이은주의 어머니 실신' 등, 유가족들의 반응을 전해왔다는

고 이은주의 소속 기획사..........

그리고 이미 11일자 경향신문에서 보도된 '전인권 17일 발리로 출국' 역시,

마치 전인권이 현 사태를 도피하는듯 교묘하게 보도되고 있다.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인권'이라는 희생양을 매장시킨 일련의 '마녀사냥'에서

반사 이익을 본 것은 다름아닌 '마이데일리를 위시한 인터넷 찌라시들'과

이은주의 자살에 대한 책임을 안고있던 '소속 기획사'라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더 이상의 추측 역시, 내가 쓰는 소설이 될 위험이 있기에 이쯤에서 글을 맺는다.

 

다만, 아직도 인터넷 스포츠신문의 허위보도에 놀아나는

네티즌들의 수준이 우려될 뿐이다....

 

과연 인터넷 실명제는 도입되어야 하는것인가?....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끊이지않는 '네티즌 인민재판'들을 보노라면,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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