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퓨타 오바짱 2 - 안녕 외할머니

풍류객잔_음악,영화 2012. 3. 9. 09:49





나의 할머니는
메이지 시대에 태어난 컴퓨터
산수 국어 사회
뭐든지 와보라구!

뭐든지 다 알고, 다리 허리 튼튼해
힘차게 one two three
영어도 술술
의치를 빛내며, 자신 있게 ABC

언제 언제까지나
오래 살아계셔 주세요
꿈꾸던 우주여행
분명 할 수 있는 날이 올꺼에요



이번엔 오리지널 오프닝 영상이다. 유튭에 암만 찾아도 없어서... 결국 네이버 블로그에 있던거
다운받아서 다시 유튭으로 올렸다. 저 옛날 애니 오프닝을 한국사람이 올려놓은걸 보면 일본애들이 당황하겠군-_-;

가사 내용을 보면, 우리 할머니는 메이지 시대 사람인데,
정말 모르는게 없는 할머니야 할머니는 컴퓨터같아! 이런 얘기지.

난 이런거 참 좋더라.
애들 눈에 엄마 아빠는 수퍼맨이잖아.

(또 한가지, 일본애들은 종종 저런 표현 쓰더라. '쇼와 시대 여성답게 맛(요리실력)으로 승부하는군!'이라든지..)


대단한 우리 외할머니.......

내 외할머니는 컴퓨터 할머니는 아니었지만, 
만병통치 스킬을 지닌 약손 할머니였고
칠순에 한겨울에도 물질을 하시던 제주출신 정통 해녀셨지.

어려운 시절 이겨내고 육남매를 키우셨지만
평생을 고생만 하다 돌아가셨네.

외할머니의 생신은 외증조할머니의 제사였지.
시어머니가 하필 그날 돌아가셔서
평생 생일상이란 받아보지도 못하시고
시어머니 제사만 모시고 사셨어.


내 외할아버지는 정의감 넘치는 분이셨어.

원래 두분은 제주 출신이신데, 625떄 군인이셨던 외할아버지는
군 부대와 함께 전국을 옮겨다니며 사시다 결국 포항시 구룡포읍에 정착하셨지.
(사실 그래서 그동넨 제주 출신 '고'씨 성 가진 이들이 무지 많거든)

내가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어릴때만 해도
그 동네에 있는 중고등학교 부지를 포함한 대 저택이 우리 외가였다고 하는데
일본으로 밀항했던 친구들을 숨겨준 죄로 이런저런 누명을 쓰고
배들도 집도 재산도 이리저리 다 빼앗기고 
지금의 작은 주택으로 쫓겨와 사셨다고...

(근데 상식적으로 가능한 얘긴지, 그당시엔 그랬던가?
 태어나기 전 얘기를, 그것도 어릴때 들은거라 정확힌 모르겠지만..)


그렇게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 내가 아주 어렸을때 
TV에서 김병조인가 하는 개그맨이 했던 말을 따라했나봐.

'할아버지 술 그만 드세요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요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신대요'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말장난이지만
외할아버지는 그때 정신이 번쩍 나셨던지
나의 그 말을 계기로 술을 딱 끊으셨어.

온동네 사람들 만나면 '우리 손주가 말이지'하며 이 얘길 또 하고 또 하시면서 말야. ㅋㅋ


그래도 그 이전에 외할아버지가 술드시던 장면은 조금씩 기억이 나.

가끔은, 젊어서 일본 건너가보았던 얘길 하셨지. 


'일본놈들이, 조선사람만 보모 다 잡아 쥑있다....
조선사람인지 일본사람인지 어떻게 구분하는지 아나?
컵 갖고 와갖고, 이거 뭐냐고 말 시켜본다.
'꼬뿌' 카먼 일본사람이라 살려주고, 
'컵' 카면 조선사람이라고 바로 쥑이뿠다..'


그리고 밀항했던 친구분들의 얘기들.

일본으로 가는 배에 어찌어찌 숨어서 타신 한 친구분,
하필 물탱크 안에 숨으셨는데....
일본에 도착해서 다른 친구분들이 확인해보니
물탱크 안에서.... 옷만 발견되었다던 이야기...



이것도 그냥 어릴적 기억의 한 조각이었는데,
나중에 키타노 다케시의 '피와 뼈'라는 영화를 보면서 
조금 실체화되어 와닿긴 했던 기억...
(거기 나오는 재일교포들도 제주도 사람들이더라고.)


피와 뼈 (2005)

Blood and Bones 
8.5
감독
최양일
출연
기타노 다케시, 스즈키 쿄카, 아라이 히로후미, 타바타 토모코, 오다기리 조
정보
드라마 | 일본 | 142 분 | 2005-02-25




근데 외할아버지 얘기를 더 많이 했구만. ㅋㅋ

그러고보니 난 외할머니에 대해서 아는게 너무 없구나.
아...... 더 슬퍼지네.


지금도 외할머니, 하면 
해녀복(시크한 전신 고무타이즈!!)입고 커다란 고무대야 끼고 돌아오셔서
온 방 안에다 성게를 깔아놓고 온 가족이 모여서 열심히 까던 기억과
물질 안하시는 날은 안방에서 드라마 보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외할머니는 참 순수한 분이셨지.
드라마에서 재미있는 장면 나오면 마냥 헤- 웃으시는 표정,
슬픈 장면에선 침울한 표정을 하셨는데, 
난 tv보다 할머니 표정 보는게 더 재미있었다. ㅋ



외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때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작년에 돌아가셨어.

외할머니 제사때... 제주도에서 외가 친척들이 우루루 @@;;

그리고 외할아버지 산소를 현충원으로 이장한후에 합장한다고 하더니
결국 잘 안됐나보더라. 자식들의 오랜 노력 끝에, 돌아가신 뒤에나마
 625 당시 공적을 인정받아 국가유공자가 되시긴 했는데,
당시에 밀항했던 친구분들 숨겨준게 다시 문제가 되었고..
외할아버지도 같이 밀항을 안했단 증거가 없다나.
그래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산소는 그대로 포항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기일이 며칠 차이가 안나서
제사도 같이 모시게 되었는데,

그게 내일이네.



포항 가고싶었지만 평일이라 어쩔수 없네요.
그래도 외할머니는, 
내가 일 열심히하고 사는걸 기뻐하실거야.
내년에는 제사가 주말이기를.




오늘로 일주일째, 

콤퓨타 오바짱 오프닝을 듣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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