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연일 정(鄭)가 문충공파다. 시조는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이고,
지금 이름 정해윤은 개명한것이고 원래 이름은 '정ㅇ용'으로 容자 돌림이다.
할아버지는 X자 희자로 '희'자 돌림,
아버지는 규자 X자로 규(圭)자 돌림을 쓰셨다.
이것이, 내가 어릴적에 어른들에게 들어서 알게 된 정보의 전부였다.
내 할아버지 댁은 포항시 동해면 공당리의 정(鄭)가 씨족촌에 있었다.
(내가 어릴때 영일군이 포항시로 통합)
온동네 사람들이 멀고 가까운 친족들이었다.
옆집, 뒷집 아이와 1~2살 차이가 났기에 그냥 친구처럼 어울리며 자랐지만
(그래봐야 명절때만 가서 어울리는게 전부였지만)
그렇게 친구처럼 놀고 때로 싸우기도 하는걸 보던 어르신들 중에는 예끼 이놈들 하시면서
"니가 니 아재뻘이고! 니가 니 조카뻘인데! 쟈는 느그 할아버지 뻘이다! 느그가 친군줄 아나!"
이렇게 화를 내고 꾸짖는 분들도 계셨다. 그땐 그저 어리둥절 했지만..
참,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를 동호댁, 동호 할아버지라 불렀다.
옆집 할아버지는 동국댁, 뒷집은 창국댁, 건너집은 창호댁이었다.
(사진 출처, 정원▽ 할아버지의 블로그)
어릴때 옆집 뒷집 아이들과 올라가 놀던 커다란 바위... 더울땐 여기 누워서 낮잠자면 최고였다! ㅋ
근데 여기 올라가서 놀고있는걸 어른들이 보면 크게 혼나곤 했는데,
이제보니 이게 고인돌이었던거구나...ㄷㄷㄷ -_-; 남방계 고인돌..맞아 이렇게 생겼지..;;;
정원▽할아버지 블로그에는 "돌빼기 (고인돌과 당수나무)" 라 써있던데,
설마 여기서 제사지내고 그랬던 영험한 나무인건가? -_-;; 혼날만 했구나.....
2.
중딩때 나는 정말 호기심이 많았다. 물론 지금도 많다. 얼마전에 썼던 얘기..
어느 애니 마지막장면에 나온 대사를 진짜로 찾아봤다는 정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언젠가 이 호기심이 날 죽일지도 모른다. ㅋ)
포항 상도중학교에서 찻길 하나 건너면 포항시립도서관이 있었다.
내 중학시절의 방과 후 시간은 거의 거기서 보낸 편이다.
물론 집히는대로 흥미를 끄는것만 찾아서 읽어댔지만..
그러다 어느날 발견한것이, 한국 성씨에 대한 통계자료와 관련 문헌들..
'정도령 설화'라는 것도 그때 책에서 보고 처음 알았다.
다들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난 사실 정도령이었다.
정동영이 아니고 바로 내가 정도령이다! 
미안... 농담이었고,
여기 시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체계화된 정보"를 얻게 되었다.
1) 연일정가는 영일 정, 오천 정이라고도 한다.
포항시로 통합되기 전의 지명이 영일(迎日)군, 현재도 남아있는 지명이 연일(延日)과 오천(烏川)이다.
지금도 그 포항, 호랑이 꼬리 안쪽을 영일만이라 부른다. 옛날 가요 '영일만 친구' 다들 알지?
이렇게 현대는 인구가 많고 행정구역이 세분화되면서 이리저리 나눠쓰는 지명들이
과거에는 전체 한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경우가 많았다.
신라때는 오천이라 부르다가, 고려때는 연일현이 되었다가 다시 영일현으로 부르다가,
조선초까지 영일현이라 하다가 다시 연일현이 되었다가 영일,연일을 혼용하기도 하고.
그러니까 결국 연일 정, 영일 정, 오천 정은 모두 같은 말, 같은 집안이란 얘기다.
2) 득성시조(得姓 始祖)는 신라 초기 6촌 중 자산진지촌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였고,
경주정가, 온양정가, 초계정가, 연일정가, 하동정가, 동래정가,
광주정가, 광성정가, 월성정가, 장기정가는 모두 뿌리가 같다.
연일정가의 시조는 정종은(鄭宗殷)이다.
그러니까, 역사시간에 배운대로 삼국사기에 나오는 박혁거세가 알에서 갑툭튀 하는순간,
원래 신라에 있던 6촌의 촌장들이 각각 이씨 최씨 정씨 손씨 배씨 설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던 거지.
이후 지백호 촌장의 후손인 정종은(鄭宗殷) 할아버지가 신라 왕에게 직언을 하다 유배되었고,
그의 후손인 정의경(鄭宜卿) 할아버지가 연일현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그 정종은 할아버지를 시조로 하는 "연일정가"가 된거란 얘기다.
3) 연일정가에는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와 감무공파(監務公派), 그리고 양숙공파(良肅公派)가 있는데,
지주사공파의 시조는 정습명(鄭襲明)으로, 대표적 인물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가 있고, 감무공파의 시조는 정극유(鄭克儒)로, 그 집안엔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있다.
4) 지주사공파에는 포은공파(圃隱公派), 생원공파(生員公派), 문계공파(文繼公派), 문손공파(文孫公派), 사정공파(司正公派), 정랑공파(正郞公派), 만호공파(萬戶公派), 도사공파(都事公派) 총 8개의 세파가 있는데, 이중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의 후손인 포은공파를 문충공파(文忠公派)라고도 한다.
내가 중딩때 도서관에서 얻은 정보는 여기까지가 전부다.
일단 여기까지였다. 어른들 말씀과 들어맞는 데가 있었고,
여전히 의문이 남는 부분도 있었다.
나는 연일정가, 지주사공파의 문충공파(혹은 포은공파) 후손으로, 돌림자 容을 쓴다.
그런데 난 몇대째냔 말이다....
위에서 말한대로, 내 대 까지 3대의 돌림자는 희, 규, 용이란 말이지.
책에 나온 연일정가의 어느 파 항렬표를 찾아봐도, 그 순서가 다르단 말이다....
그래도 중딩이 이정도 찾아낸게 어디야. 그땐 스스로가 대견했어.
이방원의 후손으로 간주되는 전주 이씨 성을 가진 녀석들과는 절대로 놀지 않았던
재수없는 꼬맹이였다는 점만 빼면 말이지. ㅋㅋㅋㅋ 더러운 이씨조선의 후예들! 이러면서 싸웠지 ㅋ
(이씨 집안 봉팔러들 미앙.. 그땐 중딩때였어 -_-)
뭐, 그래도 나만 그런건 아니었을거야? ㅋㅋ
나중에 22살때 노사모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왕(王)씨였는데,
세상에 남편이 전주이씨라는거야.... 헉... -ㅅ-
아니나다를까, 결혼 허락받기가 엄청나게 힘들었다는군.
"네년이! 왕씨 집안에 감히 이가놈을 들여!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절대!!" 이런 불호령이..ㄷㄷㄷ
5) 연일정가의 집성지, 특히 포은 선생의 후손들은 경기도 용인에 많이 산다.
당연히 그렇겠지? 포은 정몽주 할아버지의 묘가 용인시에 있는걸.
그래서 난 용인 부근이나 경기 중부쪽에 사는 '정'씨 성 가진 사람 만나면 꼭 본을 물어보곤 한다.
3.
26살때 쯤이었다. 또다시 호기심이라는 놈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다르지... 인터넷이라는 무궁무진한 정보의 바다가 있으니까.
백방으로 검색해서 찾아봤다. 그러나 여전히, 이미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찾아냈던 정보들
그 이상의 것은 없었다. 인터넷상에 공개된, 연일정가와 관련된 모든 항렬표를 뒤져봤지만
우리 집안의 항렬과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도대체 난 30대인가 32대인가...
그러다 좋은 사이트를 하나 찾아냈다.
연일정씨 홈페이지( http://www.yuniljung.com ) "연일정 닷컴"이라는 곳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무턱대고 수집하던 정보가 아주 잘 정리되어있는 곳이었다.
인사말 부분만 소개할께.
캬~ 이 할아버지 멋지지 않아?
난 이런 할아버지들 참 좋더라. 신문물을 배우고 활용함에 두려움이 없고...
그러고보니 또 생각나네.
개혁당때 알던 할아버지 한분은 '양계혈통 연구소'라는 홈페이지(http://root.or.kr)를 운영하시는데,
여기도 인사말 부분만 소개할께.
본인은 동성동본의 당사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 당시 同姓異本인데도 주위에서 같은 박씨끼리 결혼하느냐는 소리를 가끔 들었습니다. 동성동본도 아닌데 왜 그런가 하고 그 때부터 족보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알고 보니 같은 성씨끼리 결혼한다는 수군거림이 상당히 일리가 있었습니다.
부계혈통이라는 관점에서는 한 혈족이니까 당연히 대개의 같은 성씨끼리는 혼인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법률로서는 동성동본만 아니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同姓異本보다 훨씬 촌수가 먼데도 동성동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하지 못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지요.
그러나 그 父系血統이란?
나의 어머니와 딸은 나와의 혈통관계가 없고, 오직 나의 아버지와 아들만이 혈통으로 이어진다는 개념입니다.
정말로 나의 어머니와 딸은 나와의 혈통관계가 없는 것입니까?
정말로 나의 아버지와 아들만으로 혈통이 이어집니까?
정말로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셨습니까?
어느 누구도 이 명백한 모순에 대해서 모순이라 여기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보다 구체적인 관심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우선 제가 먼저 시작했지요.
어차피 이 일은 지도층의 젊은여성들이 - 일반적인 남성들에게서는 기득권 포기를 바랄 수 없을 것이고, 나이든 사람들에게서 발상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 나서야 할 일이라고 보는데, 아직은 대개가 부계혈통의 굳어진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우선 제가 먼저 시작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까지 주위의 몇몇 분들의 도움으로 이 일을 유지관리하고 있지만 점점 규모가 커지다보니 힘겨워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 일은 어느 개인이 계속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계속해야 합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피할 수 없는 넘어야 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지금이라도 어느 젊은 단체에서 이어받아 보다 구체적이고 조직적인 체계를 세워서 본격적인 연구소로 자리잡아 나가기를 기대합니다.
양계혈통연구소 운영자 - 종주
그래서 개혁당 활동하실때도 성을 떼고 '종주'라는 이름을 사용하셨지.
이렇게 200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홈페이지에서,
호주제와 동성동본금혼법 폐지 이전에는
동성동본 혼인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법률상담도 해주곤 하셨지.
개혁당때 이미 60대셨던걸로 기억하는데, 이제 칠순 넘으셨겠구나.. 종주 할아버지 잘 지내시려나..~_~
관심있는 이들은 한번쯤 방문해보시길.. 눈여겨볼만한 좋은 자료 많음..ㅎ
흠,;; 얘기가 많이 샜군. =_= 말 나온김에 소개하고싶어서...
다시 연일정가 얘기로 돌아갈께.
뭐, 결국 이 홈페이지에도 문의 글을 남겨보았지만, 이렇다할 소득은 없었어.
"포항시 (구 영일군) 동해면 공당리에 연일정가 씨족촌이 있습니다.
아주 어릴때 듣기로, 우리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후손으로 문충공파라 배웠습니다.
할아버지는 희자, 아버지는 규(圭)자, 저는 용(容)자 돌림입니다.
그런데 몇대손인지는 들은 바 없고,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찾아낸 항렬표들과는
전부 순서가 다릅니다. 어찌된 일인지..."
답변은 명료했다. "그걸 왜 나한테 묻니, 너네 집안 어른들한테 물어봐야지."
(실제로 이렇게 말씀하시진 않았지만 ㅋ 요는 그렇단거지.)
그리고 추가로 알게 된 정보들.
인터넷이나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항렬표는 거의 직계 종가의 것이고,
실제 세파들마다 항렬표는 제각기 다르거나,
세파별 종가에서만 공유하는 대표 항렬자가 있거나,
서로 항렬자 안에 水, 木, 土 등의 '변'만을 공유하거나 하는 집안들도 있단다.
그러니.. 더욱 막막해지지.
서로 사는게 바쁘다고, 10년씩 15년씩 왕래 한번 없었던 백부댁에 뜬금없이 전화해서
백부님 제가 몇대손인가요 하고 물을순 없지 않나.
그래서 다시, 궁금증은 묻어두고 잊어버리고 바쁘게 살았지.
4.
2008~2009년쯤, 외국에서 지낼때였을거야. 한국이 그립기도 했고, 특히 고향이 많이 그리웠지.
그래서 검색하다 찾아낸 뜻밖의 정보.
요즘 지방자치단체들 많이 좋아졌더라. 이런 홈페이지들도 만들어주고. ㅋ
포항시 동해면 홈페이지 ( http://dong-hae.ipohang.org/dong-hae )
여기서 우리 할아버지댁이 있는, 정가 씨족촌 공당리의 지명의 유래를 잘 설명해놓았더군.
6) 공당(孔堂)
동해면 최남단에 위치하며 구룡포읍 성동리, 장기면 죽정리와 경계를 접하는 마을로 1리인 공당, 2리인 도래말, 새태말, 안말골, 3리인 뱃돌골, 하수리 등 6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변에 수기의 지석묘가 있어 마을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으며,남쪽에 옛 내북면의 이름을 딴 내북초등학교가 있고, 학교 어귀에는 옛 숲의 흔적으로 300년생 느티나무를 비롯하여 세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 있다.
그렇지.. 내 아버지의 모교이자, 옆집 뒷집 친척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내북국민학교였지.
그녀석들이 졸업할때 이미 전교생 6명이 다 졸업해버려서 폐교되고 청소년야영장으로 개조되었다지만..
조선 선조때의 학자 정응성(鄭應星)이 임란을 피하여 이곳에 와 공맹(孔孟)의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라 하여, 혹은 지형이 구멍의 형상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오천 정씨의 세거지로 정사하(鄭師夏)와 정동환(鄭東煥)을 추모하는 북계서사(北溪書社)가 있으며, 매년 11월초에 마을 앞 제당에서 부부 동신과 종 등 3신위를 모시고 동제를 지낸다.
(본문에 설명된 3신위로 추정되는 문중 제사 풍경... 게다가 사진 날짜 11월...ㄷㄷㄷ)
그렇다면 이제 실마리를 찾았지?
저 내용에 언급된 정응성 할아버지, 정사하/정동환 할아버지들이 내 직계 선조란 얘기니까,
저분들을 연일정가 문충공파 계보 내에서 찾아내면 되는거지!
그래서 다시 찾은 연일정가 홈페이지,
그러나 그 사이 엄청나게 방대한 족보들이 업데이트 되었고,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7) 지주사공파의 세파중 하나인 포은공파, 그 안에도 엄~~~청나게 많은 세파들이 있다는걸.....
포은공파의 세파들
별좌공파, 판서공파, 포천공파(또 이 안에 왕곡파, 이한공파, 공한공파, 영한공파, 명한공파, 諱佾公파, 諱侃公파, 諱儆公파, 諱偉公파, 諱仁公파), 첨추공파, 사과공파, 감찰공파, 사과공파, 정랑공파, 정자공파, 별제공파, 사용공파, 사정공파, 세륜공파, 임헌공파, 세안공파, 세태공파, 통선랑공파, 판관공파, 사직공파, 도촌공파, 현감공파, 충순공파, 참봉공파, 부장공파, 현령공파, 승훈랑공파, 현감공파, 부사공파, 진사공파, 감찰공파, 교수공파, 참봉공파, 부사공파, 감찰공파, 통례공파, 정언공파, 도사공파, 사용공파, 생원공파, 광미공파, 참봉공파
생원공파의 세파들
생원공파, 설천공파, 교리공파, 한윤공파, 지평공파
사정공파의 세파들
송암공파, 문함공파, 곤봉공파, 쌍봉공파, 좌랑공파
문손공파, 문계공파, 정랑공파, 만호공파, 도사공파는 다행히(?) 세파 없음. (혹은 이 사이트 내에 알려지거나 기록된 바 없음)
아... 저 압도적으로 우월한 세파들을 보라.. ㄷㄷㄷ 역시 지주사공파를 대표하는 인물 포은 할아버지의 후손이라 그런가.. 정말 기가 질렸다.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족보들을 뒤지는데....
근데!! 왜 이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족보들을 텍스트로 하지않고 전부 그림파일로 만들어놔서!
검색도 안되고 일일이 그림파일 열어보며 찾아야 하는건데!!!! ㅠ_ㅠ
그러다 결국 포기.. ㅡ.ㅜ
5.
대단원의 막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이제 2011년 시점으로 돌아와서... 내 고향 방파제가 어쩌구 하는 포스팅을 한적이 있었지?
이건 내 외가가 있던 구룡포읍의 방파제야. 내 10살 이하 어린시절은 거의 거기서 보냈지...
생각해보니 10살 넘고 그 방파제 가 본 기억이 없어. 조만간에 포항 갈 일 생기면 꼭 가볼거야.
여하튼, 구룡포 방파제 사진을 찾아내고나니 또다시 고향 생각이 물씬....
이번에도 공당을 찾아봤지.
어 그런데!!
어떤사람이 자기 블로그에다가 고향 사진이라며 공당 사진을 올려놨어!
게다가 블로그 주인장 이름이 정원▽......
이 사진 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우리 할아버지 댁이 있어......
내가 채 열살도 되지 않았던 시절, 그땐 비포장도로였지만.. 여기서 뛰어놀고,
네살, 혹은 다섯살때 옆집 뒷집 아이와 밭에 갔다가,
난생 처음보는 '파'를 꺾으면 폭발한다는 뒷집 아이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그녀석이 꺾는 시늉을 하자 '우앙~~'하고 울며 할아버지댁으로 도망쳤던 기억...
가난에 찌들어 사느라, 잔치날 처음 먹어본 두부 부침을 옆집 아이가 '이거 뱀 고기데이'라고 하자
먹다 말고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 (물론 지금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두부부침 ㅋ)
이 블로그 발견하고 이 사진을 보는순간 전율이 흘렀다..........
누구지? 어느 집 사람일까?
일단 블로그에 메일 주소를 남겼다.
"저는 동호댁 ㅇ자 희자 할아버지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규(圭)자 돌림, 저는 용(容)자 돌림입니다.
혹시 가까운 친족 분이신가요? 연락 한번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는 한참 잊어버리고 지내던 중, 3일 전에 메일이 날아왔다.
나는 공당 에서 대구로 이사온지 45년 되었으며
구룡포 중학교 6회 졸업생 춘자고모 와 동창생이며
현재 대구에 살고 있어요 전화 한번 주세요
공당 우리 일족 가계도
정○희 - 규☆ - △용, △아
- 규△
- 규○
정△희 - 규□
- 규▽
- 규◇ - □용 - 원▽
- 원□
- 원○
주) 돌림자는 중간자, 끝글자를 번갈아 쓰니까..
뭔가, 속에서 뜨거운 것이 치솟아 올랐다......
일단 급한 업무를 마무리해놓고,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원자 ▽자 선생님 되십니까? 메일 잘 받았습니다.
- 아, 목소리가 젊은 사람 같구만. 나는 올해 칠십 셋일세.
%ㅕ#()%)%#@%_#(%_ ^^????...........칠십셋 칠십셋 칠십셋......
약 15분가량, 들뜬 목소리의 통화였다.
칠순이 넘으셨지만 사진 찍는 취미가 있으셨고,
PC를 구입하고 인터넷을 배워 블로그란걸 만들어 사진을 올리셨다.
그리고 45년전에 떠난 고향, 그래도 매년 1번은 꼭 찾아갔던 고향에서
자신을 특히나 귀여워하였던 동호 할아버지의 손자-삼남의 장남-가 그 블로그를 발견했고
이렇게 이메일로 연결되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나는 연일정가 지주사공파의 문충공파의 참봉공파 28대손이고,
이분은 29대손으로 내 조카뻘 되는 할아버지시란걸...
.....내 부모는 무척 어릴때 고향을 등졌고, 아버지가 23살, 어머니 21살때 나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자마자 당장 생활고에 허덕이며 정신없이 살아왔을텐데,
세파란 그렇다. 사실 애초에 지주사공파와 문충공파가 갈라진 이유, 서로 촌수를 따지지 못하고
항렬과 종친회를 따로 하고 있는 이유도, 선대의 무덤들을 찾지 못해서다.
어디 심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일제시대때 공당에 있던 우리 선산이 심가 집안으로 넘어간 이후
아직도 우리 조상들의 무덤을 찾지 못하고 있단다....
결국, 20여년 전에 우리 할아버지와 같은 항렬에 종손이신 ◇자 희자 할아버지께서
기록이 남아있는 새 파조를 모시고 '참봉공파'라는 세파를 새로 만들어 족보를 편찬하셨다는데,
어린 나이에 객지에 나와서, 심지어 부모가 되어 생계를 꾸려야 했던
내 아버지는 그 족보를 받지 못한거고.
내 뿌리 찾는데 참 오래 걸렸다... 중딩때 생긴 이 호기심 푸는데 족히 15년은 걸렸지 않은가.
참, 내 조카뻘 되시는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기들도 참 걸작이다.
"내가 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게 벌써 40년 전이니,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네 큰아버지가 슬하에 딸 하나 아들 하나 두었단 얘긴 들었지만,
너희가 태어났단 얘긴 듣지 못했구나. 워낙에 어릴때 객지로 나가서 살았으니..
어린시절, 그러니까 내 동생 원□가 네 큰아버지인 규☆이랑 동갑이라 친구처럼 어울리며 자랐지.
나는 나이 차이가 많아서 별로 어울리지 않아 기억에 없지만, 내 동생은 네 아버지도 잘 알거야."
내 어린시절 그랬듯, 그런 모습을 보고 꾸짖는 어르신이 또 계셨겠지?
"이놈들아! 네놈이 저놈 조카고! 저놈이 네놈 아재뻘인데! 감히 맞먹고 놀아!" 하는 불호령 말이지. ㅋㅋ
조만간에 대구에 갈 일이 있으면 꼭 찾아뵙기로 약속하고 통화를 끝냈다.
뭔가 훈훈하다. ㅋㅋㅋㅋ 이렇게 인터넷에서 친족을 만나기도 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연일정가 홈페이지에서 내 항렬자를 찾아보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열고.... 참봉공파.... 헉..... 아니 잠깐........;;;;;;;;;;;;
8) 연일정가에는 총 6개의 참봉공파(參奉公派)가 있다.
지주사공파 포은공파에 3개, 생원공파, 도사공파, 사정공파에 각 1개.
.......-_-;;;;
왜 하필 지주사공파의 포은공파 밑에 참봉공파가 3개나 있냐고!!!
선조님들 참 너무하십니다 그려.
참봉 벼슬 하셨다고 참봉공파... ㅜㅜ;
할아버지도 참... 참봉공파 시조가 누군지는 알려주셨어야죠...
각각의 참봉공파의 파조인 정홍(鄭洪) 정기형(鄭箕亨) 정사달(鄭士達) 세 할아버지 중
어느분이 내 직계 시조인지, 포항시 동해면 공당리에 모여 살고있는 내 친족들의 선조인지가
마지막 숙제로 남았다.
(연일정가 홈페이지는 기본적으로 연일정가의 모든 세족들의 족보를 집대성, 총망라하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그것도 각 세파들의 제보와 정보 제공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여기에 수록된 3개의 참봉공파는, 다른 세파들과 공유되는 23대까지의 기록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하.... 아직도 풀리지 않았구나.....
뭐, 하는 수 없지. 담에 대구 가서 여쭤보지 뭐.
덤으로 그 족보 한권 얻어오든지 스캔해오든지 해서
연일정가 홈페이지에도 올려주고 말이지.
5년전에 질문 올렸던 그 사람이라고,
이제야 그 답을 찾았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