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박사와 명화전기의 아리랑 명전! I'm Space Fantasy!

풍류객잔_음악,영화 2009. 2. 6. 22:14




명화전기와 함께 한 '아리랑 명전'의 첫번째 버전(일어)의 '나는 우주의 판타지'...





가재발과 함께한 한국어판의 스페이스 판타지.





이 앨범은 아직도 찾고 있는 중.... 덴키 그루브도 무지 좋아하는데..아 갖고싶다 +_+






경기도 마석 태생. 음악인인 부친의 영향과, 모친에게 민요와 판소리를 배우며 자랐다. 어린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뒤이어 곧 모친도 별세하자 서울로 올라와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유원지에 세워둔 관광버스에서 사람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괜찮은 직업이 되겠다고 생각, 불현듯 마음이 동해 노래한 것이 계기가 되어 뜻하지 않게 관광버스 가이드가 되었다.

손님들을 집합시키려고 입으로 "우리리히~!"하는 호루라기 소리를 내는 것을 비롯해서 장시간 버스에 탄 관광객들을 무료하지 않게 하려고 전주,반주,간주 등에 입으로 애드립을 넣어 여러 곳들을 메들리로 부르는 스타일로 관광버스 가이드 가운데서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레퍼토리의 곡을 잘 안다고 해서 지금의 예명이 된 "이박사"라는 닉네임을 얻게 되었다.

여러 레코드사에서 레코딩 제의가 있었으나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않아 거절하던 중, 1989년에 우연히 버스에 탄 레코드 기획자이자 지방 유명 클럽 사장으로부터 자신의 스타일대로 노래해도 좋다는 제안을 받고 의기투합, 그대로 스튜디오로 직행해 2시간 만에 레코딩을 마치고 카셋트를 내면서 본격적인 가수의 길을 걷게 된다.

트레이드 마크인 독특한 애드립과 경쾌한 디스코 매들리로 <신바람 이박사 디스코 메들리 1집>을 발표, 순식간에 운전수를 중심으로 중,장년층의 폭발적 호응을 얻어 백만장 이산의 카셋트 판매고를 올려 장안의 화제의 가수로 떠올랐다. 덕분에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MBC-TV<인간시대>특집프로그램에 소개되고, 이어 MBC-TV<세상사는 이야기>에 초청되어 뛰어난 입심을 뽐내 결국<내고향 좋을시고>에 초대가수로 몇번 소개되기도 하였다.

1집의 빅히트에 힘입어 이후 19개의 카셋트를 발표, 수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초창기에는 클럽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각종 연회나 생일파티,효도잔치 등에서 진행을 겸한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음악적 성향이 일부 연령층에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다소 경박하다거나 저질스럽다는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도외시 되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뽕짝 디스코 메들리 가수 이박사가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은 오랜 기간동안의 기획을 통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해외 직배사로서 국내가수들의 해외진출을 모색해 오던 소니뮤직 코리아에서는 가장 공략하기 용이한 시장이 일본이라고 판단, 지금까지 어설픈 일본 진출 시도로 기존의 가수들이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 한국에서 밖에 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수를 찾고 있던 차에 1995년 가을 일본의 인디 레이블에서 월드 뮤직의 한 쟝르로서 한국의 디스코 메들리 카셋트를 CD화 해서 수입판으로 소개한 것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화제가 되면서 여러 음악전문 잡지에 기사가 실리자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박사를 본격적으로 일본에 소개하고자 생각하고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때마침 한국 대중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던 일본 소니뮤직의 자회사인 'Ki/oon SONY(큔소니)' 레코드 사장도 이박사의 음악을 듣고서 다른 디스코 메들리 가수들과는 전혀 틀린 스타일로 노래하는 이박사의 음악에 매료되어 일본에서의 음반발매를 생각, 결국 한일 공동사업의 일환으로 이박사의 앨범을 일본에 발매하기에 이른다.

소니뮤직 코리아와 큔소니 레코드는 수차례에 걸친 기획 회의를 통해 이박사가 한국뽕짝 디스코의 제 1인자로 널리 알려진 점과 일본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점을 감안, 일본젊은 층들에게 사랑받는 최신 히트곡을 그의 독특한 뽕짝 스타일로 된 한국어 앨범을 제작,앨범 발매 몇달 전부터 융단폭격에 가까운 대대적인 홍보 활동을 펼쳐 이미 이 박사는 일본내 각종 공중파 방송 및 유선방송,주요 인쇄매체에 커버나 톱기사로 여러 차례 실린 바 있다.

96년2월, 국내 가요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나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감정이 상당히 껄끄러운 점을 고려하여 대단히 조용한 가운데 일본 미디어 및 음반관계자, 일본 최고의 댄스 트리오<덴키 그루브>의 리드 싱어 및 새 앨범 작업에 이박사를 게스트 싱어로 초대한 인기 퍼포먼스 그룹<모던 초키초키스>의 리드싱어 겸 프로듀서 등 30명의 취재단이 내한,독점 인터뷰를 비롯해 때마침 소니뮤직 관계자의 모친 칠순잔치에 초대된 이박사의 공연장면을 생생히 담아갔다.

이 박사는 96년3월21일에 일본에서 싱글<이박사의 뽕짝 디스코 파트1&2>,4월1일에는 앨범<이박사의 뽕짝 대백과>에 이어 특히 젊은층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역시 젊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덴끼 그루브"가 리믹싱한 <이박사 덴끼 그루브 : 열려라 뽕짝>을 발매했다.

현지에서는 아직 신인가수 인데다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어 처음에는 다소 소극적으로 앨범을 주문하던 주요 도시의 대형 레코드 매장들도 이 박사가 예상외로 높은 인기를 얻자 앞 다투어 매장 전면에 대형 간판을 장식하는 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톱 가수들의 신보와 나란히 부스를 설치해 레코드를 판매했다. 특히 오오사카의 타워레코드나 HMV등의 대형 매장에서는 인 스토아 이벤트를 마련, 현장에서 몇 십분 만에 매장의 CD가 전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디스코 메들리의 황제>라는 프레이즈를 통해 이 박사를 소개함과 동시에 월드 뮤직의 커다란 한 장르로서 뽕짝 디스코 메들리를 일본시장에 소개한 일본 소니뮤직의 전사적인 노력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 덕분에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한국인다운 파워로 박력있게 표현해 내는 가수로 소개된 이 박사는 30년간 업계 판매 1위를 달리는 "킨쵸"라는 제약회사의 인기상품 CF모델로도 기용됐다.
킨쵸사의 커머셜은 지난 30년간 재미난 구성과 특이한 캐릭터의 기용으로 방영시마다 빅 히트를 기록하는 광고로 일단 모델로 기용된다는 것만으로도 화제에 올라 현지 연예인들도 낮은 개런티라도 출연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
외국인으로서 모델에 기용된 것도 선례가 없는 일이거니와 한국의 강원도 아리랑을 CM송으로 사용,한국말로 노래하는 일은 현지에서도 상당히 고무적인 사태로 받아들여져 방영 직후 주요 일간지 머릿기사를 장식했다.

일본현지에서의 활동을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일본 톱가수들도 꿈의 무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무도관에서 데뷰 공연을 가진 이 박사는 1만여명의 일본 팬들이 한국말로 "사랑해요,이박사!"라고 외쳐대는 열띤 호응 가운데 성공리에 첫공연을 마쳤다. 지금도 일본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지TV의라는 프로에는 몇 년전 다이애너 로스가 출연한 이후로 외국인으로서는 두번째로 출연해 즉석 라이브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NHK-TV,요미우리TV, TV아사히, 니혼테레비 등 주요 공중파 방송 및 SPACE SHOWER TV 등의 주요 음악 전문 케이블 TV등의 일본 프로모션 투어 밀착 취재 및 출연, 아사히 신문, 스포츠 니폰 등 주요 일간지와의 독점 인터뷰, J-WAVE, TOKYO FM, NIHON FM 등 각종 FM라디오 출연 및 동경대학교 특별초청<한국의 뽕짝강의>, 인터뷰,<피아>,,<스튜디오 보이스>,<팝틴>,<주간문춘>,<포커스>,<시사통신>,<디지털 보이>,<오리지날 컨피던스> 등의 주요 인쇄 매체에 연속 특집 기사로 개제되어 현지에서의 인지도는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 얼굴을 알아보고 팬들의 사인공세과 사진촬영을 요구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박사라는 가수가 현지에서도 깜짝 놀랄만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은 소니뮤직측에서 음반기획 당시부터 조용필,계은숙,김연자같은 기존의 경우처럼 한국에서도 레벨이 있는 기성가수를 일본 중,장년층팬을 겨냥해 일본식 음악 훈련과 일본식 편곡과 작곡으로 일본말로 앨범을 낸 것이 아니라, 한국의 뽕짝 디스코 메들리 스타일 그대로 한국말로 한국의 전통민요와 일본의 최신 히트곡을 적절히 안배해 일본 젊은이들에게 맞는 취향으로 음반을 기획해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기반으로 발전한 일종의 월드 테크노 뮤직으로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시켜 소개한 마케팅 전략이 주효했다는 것이 현지언론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덕분에 일본 현지에서는 때아닌 한국 가요붐이 일어 일본인들 사이에서 한국말 연구회나 한국가요 연구회 등이 결성되기도 하고, 일본 최고 연예인들도 방송에서 나와 어설프기는 하지만 한국어로 한국노래를 부른 것이 대히트를 기록할 정도였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선 이박사를 모르면 최신유행에 민감한 친구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최첨단의 음악으로 평가 받고 있어 이박사는 재일교포들 사이에서 대단한 자랑거리이자 긍지로 손꼽혔다.

특히 라이브에서 카리스마적 매력과 끼를 십분 발휘하는 이박사는 동경과 오오사카 타워 레코드매장과 HMV등의 대형 레코드매장의 인스토아 이벤트와 TBS-TV BLITZ홀에서 가진 라이브에는 팬클럽까지 결성한 팬들이 한국의 소고와 태극기등을 갖고 몰려와 객석을 가득매운 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팬클럽과 일본 연예 관계자들이 마련해 준 환영파티에는 70여명의 일본 음반 및 방송관계자들이 멀리 오오사카까지 찾아와 즉석에서 공연 및 이벤트 초청 스케쥴을 잡기도 하였는데, 특히 오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에서 대단히 인기가 높아 관서 지방의 팬클럽 회원들은 이박사를 만나기 위해 일본의 골든 위크라는 휴가기간을 이용해 직접 방한해 모임을 갖기도 했다.

또한 이박사는 직배사로서의 강점을 최대한 살려 소니뮤직을 통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장도 공략할 목적으로, 그첫무대로 홍콩에서 개최된 '96미뎀 아시아의<소니 테크노 나잇>' 행사에 초대되어 그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이박사는 함께 행사에 참가한 일본의 톱DJ들과 나란히 공연을 하였는데, 관객들에게 많은 인기를 모았으며 전세계 음악 관계자들과 취재진들의 가장 높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이박사의 스케쥴을 파악하고 홍콩까지 찾아온 극성팬들의 모습도 보였다.

2000년이 시작되어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상하리만큼 묘한 이박사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인터넷 정보매체 통해서 접하게 된 그들 사이에서 이박사의 테크노 뽕짝이라는(일명 테크뽕) 새로운 쟝르를 접하게 된것이다. 그들 사이에선 팬클럽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생긴지 두달여 밖에 안되는 팬클럽은 조회수,히트수도 어느 다른 팬클럽을 능가하는 위력으로 다가오기 시작했고, 또한 여기에 방송매체, 인쇄매체들, 광고매체들도 앞다투어 이박사의 취재에 전화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그것에 맞춰 소니뮤직 코리아에서는 이박사의 한국 앨범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 동안의 일본에서의 인지도와 한국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결합시켜서 이박사를 전국민적인 가수로서 손색없는 아티스트로서 키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 신보에는 가재발이라는 테크노DJ의 참여로 한층 더 새롭고 앞서가는 쟝르를 선보였다.
이박사의 활동은 한국 가수들의 본격적 해외 진출에 있어서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Sony Music)








아...ㅠㅠ 정말 코피터지게 좋심...


트랙백임다. -_- 원문 블로그(클릭)로 가시면 아리랑명전 싱글앨범 전체를 감상하실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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